[특파원 칼럼] 美 대선 제3후보의 영향력(2008.8.20)
[특파원 칼럼] 美 대선 제3후보의 영향력(2008.8.20)
재미없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변수가 있다.
제3 후보들의 영향력이다. 이번에는 친 공화당 성향 후보와 친 민주당 성향 후보가 나란히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양당 지지층의 표를 서로 잠식할 판이다.
미국 역사 전문가인 마이클 카진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제3 후보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며 "그가 가져가는 단 1%의 표가 주별 승리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인공들은 자유당 간판을 내건 밥 바 전 연방하원의원(60)과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74)다.
밥 바 전 의원은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때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전국적으로 유명인물이 됐다. 중앙정보국(CIA) 요원과 조지아주 검사를 지낸 뒤 1995년부터 8년간 조지아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총기 보유와 낙태 금지를 강력히 지지하는 보수 정치의 선봉이다. 9ㆍ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영장 없는 도청 등 사생활 침해 소지가 많은 정책을 추진한다며 반발해 2006년 자유당에 입당했다.
바의 지지 세력은 `원조 보수주의자`들이다. 아직도 공화당 내 주류 보수그룹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존 매케인 후보가 긴장해야 하는 대목이다.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대선 출마는 1992년 첫 시도 이후 이번이 5번째다. 한때는 녹색당을 내걸었지만 이번에는 무소속 후보다.
네이더가 표방하는 정책은 독신자들에 대한 건강보험 제공, 노동법 개혁, 기업범죄 근절 등이다.
네이더는 지난 2월 출마 선언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수에게 독점돼 있는 권력을 다수에게로 이동시키겠다"고 말했다.
레바논계 이민 2세인 그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다. 이미 지난 1965년 미국 자동차의 안전 문제를 고발하며 소비자 운동의 상징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그는 2004년 0.3%, 2000년에는 2.7%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2000년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네이더가 가져간 표는 9만7488표. 앨 고어는 조지 부시 후보에게 537표를 뒤졌으니 네이더에게 갔던 표 중에 0.5%만 고어에게 남아 있었어도 대선 결과 자체가 달라졌을 수 있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그 주의 대의원을 전부 가져가는 미국 선거제도에서 나온 제3 후보의 위력이다.
여론조사기관 조그비가 지난 6~7월 34개 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바는 전 지역에서 네이더를 앞섰다. 25개 주에서 5%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네이더는 전체 지역에서 1~2%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공동 여론조사에서 랠프 네이더 등 제3 후보들을 포함할 경우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간 격차는 오바마 48% 대 매케인 35%로 13%포인트 차이로 나왔다. 제3 후보를 감안하지 않은 맞대결에서는 6%포인트 차이지만 제3 후보 덕분에 더욱 벌어졌다.
선거 전문가들은 제3 후보들의 존재가 매케인보다 오바마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지지율 격차가 박빙인 경합 지역에서 밥 바가 매케인의 표를 가져갈 경우 오바마에게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