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교민, 투표권 받고 들떠있지만… (2009.3.5)
[특파원 칼럼] 美교민, 투표권 받고 들떠있지만… (2009.3.5)
시작도 해보지 않고 걱정부터 하는 건 우스워 보인다.
2004년에도, 2007년에도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논쟁은 할 만큼 했다. 헌법소원을 받아들인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까지 내려 교통정리를 해줬으니 더 이상 근본을 흔드는 문제 제기는 불필요하다.
재외국민 투표권 얘기다.
올해 2월 관련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다. 2012년부터 시행하는 일만 남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240만명 안팎이다. 다른 통계로는 일시 체류자와 영주권자를 합쳐 300만명까지도 잡는다.
지역별 분포로 볼 때 미국에 있는 재외국민 비중이 가장 높을 듯하다. 영향력도 제일 클 것이다. 미국 내 일시 체류자는 46만명으로 전체 국외 일시 체류자 155만명 가운데 30%가량이다. 영주권자는 73만명으로 전체 외국 영주권자 145만명 중 절반에 달한다.
기자는 재외국민 투표권을 부여받은 미국 동포들의 뜨거운 반응을 직접 확인했다. 몸은 외국에 나와 있지만 고국 정치 발전을 위해 자신들도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해온 기자는 걱정부터 앞섰다. 한인사회 특유의 분파성과 갈등을 속속들이 봐왔기 때문이다.
워싱턴DC와 인근 메릴랜드주,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한인은 총 17만8000명으로 추산된다. 한인사회에 결성돼 있는 한인단체는 무려 160개에 달한다.
정치 활동이나 경제적 목적을 위한 이익단체는 물론이고 한인회, 향우회, 동문회, 봉사회, 친목단체를 모두 아우르는 숫자다. 한인사회를 대표하겠다고 자임하는 지역별 한인회만 13개다.
같은 지역 일본인 사회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워싱턴DC 인근에 거주하는 일본인 5만여 명이 결성한 단체는 불과 3개라고 한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 자격을 주는 일인회, 학생들을 위한 일본학교, 그리고 일본 관련 기업들을 위한 일본상공회의소 등이다. 워싱턴에 주재하는 일본 총영사관 관계자 말이다.
`160대3`이라는 숫자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2006년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에 있는 `미주한인시민연맹` 대표 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사건을 담당한 미국 법원 판사는 첫 심리에서 어이없어하며 원고와 피고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정통성이 있느냐는 싸움을 내가 어떻게 판결할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는 당신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지난해에도 워싱턴DC 인근 한 법원에 한인사회 어느 향우회 회장에 대해 취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피고가 주장하는 고향은 가짜이며, 그는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니니 향우회장 취임을 무효화해 달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배정받은 판사 역시 심리 기일조차 잡지 않은 채 막후에서 자체 해결을 종용하고 있다. 동족 간 이견을 미국 법원까지 끌고온 처사에 혀를 차고 있는 꼴이다.
향우회장 자리를 놓고도 벌이는 이런 극한 대결을 감안하면 대통령을 뽑는 선거 운동을 둘러싼 파벌과 정파 간 갈등이 얼마나 클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재외국민 투표권 행사는 이제 확정된 일이다. 지레짐작과 염려만 하고 있는 건 더 이상 필요 없다.
기왕 시작된 일이라면 잘 끌고 갈 궁리를 하자. 그러려면 파벌 만드는 습성부터 극복하는 것이 첫째 과제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