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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부상(2007.8.8)

joon mania 2015. 8. 7. 17:23
[특파원 칼럼]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부상(2007.8.8)

◆ 사례 1. 

= 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관은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지난해 11월 전까지는 오른손으로 골프를 쳤다. 그때는 주요 무대에서 오른손 골퍼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그런데 중간선거라는 변혁을 거친 뒤 지형이 달라졌다. 오른손 골퍼들이 대거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를 왼손 골퍼들이 메웠다. 그 뒤로는 오른손 스윙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자꾸 마찰을 빚게 됐다. 일이 되도록 하려니 왼손 골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뒤로는 아예 왼손 골퍼로 전환했다. 미국 정치판에 불어닥친 `아메리칸 리얼리즘`이 바로 이런 것이다." 

◆ 사례 2. 

= 2ㆍ13 합의로 6자회담을 소생시킨 미국과 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산 2500만달러 송금을 놓고 막판 줄다리기를 할 때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월 BDA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DA와 미국 내 금융기관들에 대해 금융거래를 사실상 봉쇄했다. 이른바 `애국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정작 국무부는 BDA에 묶여 있던 북한 돈을 돌려주기 위해 고민하다 미국 내 자산 규모 4위인 와코비아은행을 끌어들였다.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민간 상업은행에 면죄부를 줄 테니 창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고민하던 와코비아은행은 손을 들고 포기했다. 아무리 묘안을 짜내도 `애국법`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재무부에서 나왔다. 송금 창구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산하 뉴욕연방은행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사실상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리 산하 지역은행은 `애국법` 규정 대상이 아니라는 허점을 발견해냈던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에 적용되는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사례다. 

요즘 미국 외교정책에 현실주의와 실용 노선이 부상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외교팀의 변화를 말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난 6월 초 뉴욕 경제클럽에서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솔직히 부시 행정부가 100년간 이어져온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왔다"고 자인했다. 그는 100년에 걸친 외교정책을 `아메리칸 리얼리즘(미국식 현실주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날 연설에서 아메리칸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을 16차례나 반복했다. "아메리칸 리얼리즘은 지금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 

그는 과거의 실패를 인정했다.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은 유럽 중동 아시아 등 우방국들에 조임을 당해왔습니다. 지구온난화에서부터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접근법은 주변국들과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위험스러운 외교정책은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정책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솔직하게 토로했다. "미국 정책은 혁명적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었다"고.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정신적 대부는 공화당 출신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진보적 이상주의자`나 `냉혹한 현실주의자`라고 규정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미국식 현실주의의 실체를 보여준 첫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노선은 1950년대 냉전시대 민주당 출신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재임 6년을 보낸 부시 대통령은 본인 외교정책에 아메리칸 리얼리즘을 적용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등이 대표적이다. `될 성 싶은 일`부터 시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8년 집권 기간에 단 하나라도 결실을 맺은 사안은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일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에게 최대 난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대테러 전쟁을 기치로 시작한 두 전쟁이지만 궁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수렁 속에 빠져들기만 한다. 

그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도 `아메리칸 리얼리즘`을 적용할 것인지 그의 남은 집권 기간까지 지켜볼 과제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