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 작은 실천부터 시작합시다(2010년 1월1일자)
[데스크 컬럼] 작은 실천부터 시작합시다(2010년 1월1일자)
기부는 좋은 일이지만
남들 몫으로 생각했다면
돈이든 재능이든
베풀고 도울 일 찾으며
새해 아침 열어 보기를
새해 첫날이니 밝은 얘기로 풀어 보려 한다.
해 바뀌기 전 송년회를 핑계로 이런 저런 모임에 다녔다. 오랜만에 만난 막역지우들과는 그저 웃고 즐겼다. 업무를 사이에 둔 취재원들과는 교분을 쌓았다. 워싱턴 특파원시절 함께 일했던 이들과는 옛 추억을 올리며 즐거워했다. 나라 걱정하는 원로들과 선배들을 만나서는 한국 사회의 앞날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일면 소모적이었고 어찌보면 건설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비교해봐도 보람있고 의미있는 자리는 따로 있었다.
지난달 중순 어느 일요일 저녁 한 지인의 초청으로 갔던 음악회였다. 어느 자선단체가 마련한 장애우들의 공연이었다.
서른살의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씨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1악장을 멋지게 쳐냈다.1급 뇌성마비를 앓아 말과 걸음이 편치 않은 그는 직접 작곡한 ‘그리움’이라는 곡도 직접 소개한 뒤 연주했다. 피아니스트는 힘들게 의자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를 시작한 뒤 처음에는 주먹으로 건반을 쳤습니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연습을 해가며 희망이라는 단어만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희망이 저를 피아니스트로 만들어냈습니다.”
뭉클해진 청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시각 장애우들로만 구성된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영화음악 작곡가 엔리오 모리코네의 작품을 감미로운 선율로 들려줬다. 유명한 음악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여러 노래를 메들리로 들려줄 땐 청중들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세계 최초의 시각 장애우로 이뤄진 관현악단이라고 했다.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이상재 나살렛대 음대 교수는 “지난 2008년 12월 그때까지 후원해주던 재단이 재정 사정을 이유로 지원해주지 못한다고 할 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하지만 대신 도움 줄 이들을 찾았고 계속 무대에 설수 있게돼 기쁘다”고 말했다.본인도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이 교수는 "시각 장애우들로 구성된 챔버 오케스트라에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각자의 삶이 녹아 있다“고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각 장애를 안고 있음에도 클래식 기타를 멋지게 치는 허지연 양은 단연 돋보였다.피아노,바이올린, 첼로까지 포함된 앙상블 팀에서다. 뇌성마비, 시각장애 등을 앓고 있는 초,중,고교 학생들로 구성된 8명의 앙상블팀이다.그들이 들려준 대중가요는 마치 성가곡 같았다. 어느 전문 연주자들의 무대보다 더 장엄했고 감동스러웠다.
나는 그날 장애우들의 연주를 들으며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의미를 실감했다. 그들이 연주 무대에 설수 있었던건 주변의 도움과 관심 덕분이었다. 장애우들에게 아무 댓가 없이 음악을 가르친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연주 무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재정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의 노력도 있었다.변호사로 일하는 노재헌씨의 헌신이 돋보였다.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그들에게 평소 했다는 봉사 활동은 일회성이 아닌듯했다.
장애우들을 도왔던 이들에게 경의를 보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장애를 딛고 정상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연주를 해내는 본인들에게 보낸 박수가 먼저다. 장애우들을 돕기 위해 돈도 내고 봉사 하는 자선단체 회원들에게 보낸 박수가 다음이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나도 참여했다. 작은 돈이지만 자선단체에 매달 후원하겠다는 약정을 했다.
지난 연말 내린 작은 결정 덕분에 새해 아침 나는 뿌듯하다. 장애우들의 아름다운 연주 활동을 지원하는데 내 성의가 더해진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건방져보이더라도 감히 권유한다.새해를 시작하는 이 아침에 당장 찾아나서라고. 자선과 기부가 좋은 일이지만 남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다.
돈이든 재능이든 남에게 베풀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이들이라면 도울 일을 찾으며 새해 아침을 열면 어떨까.
<윤경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