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

[데스크 칼럼]이번 기회에 자리를 없앨까요(2010.9.17)

joon mania 2015. 8. 8. 22:11

[데스크 칼럼]이번 기회에 자리를 없앨까요(2010.9.17)


수두룩한 장차관급 공직을 

몇개월씩 비워놓는 건 

각료 제도의 취지 훼손"

더 이상 국민들 우롱 말고

빈자리 인선 빨리 매듭지어야



이건 비정상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납득이 안간다. 


평소 같으면 적잖게 주목을 끌었을 만한 공직 여러 자리가 비어 있다. 국무총리에서부터 차관보급 자리까지 다양하다. 


정운찬 전 총리가 퇴임한 건 지난 8월 11일이었다. 한 달 하고도 일주일 동안 행정을 총괄할 국무총리 없이 보내고 있다. 김황식 감사원장이 이제야 후보로 내정됐지만 씁쓸하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물러난 것도 벌써 2주일 전이다. 수장을 잃은 한국 외교는 비틀거리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물러난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는 지난 6월 이후 3개월 동안 비어 있다. 


어윤대 씨가 KB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면서 내놓은 국가브랜드위원장도 두 달째 공석이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금융통화위원 자리는 벌써 6개월째 비어 있다. 내부 승진으로 비워진 국세청 차장 자리도 후임 인선 없이 공석이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거짓말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건 8월 29일이었다. 쪽방촌 투기와 부동산 거래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와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도 같은 날 물러났다. 


그 후로 대한민국 공직사회 인사시스템은 얼어붙어 버렸다고 나는 단언한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움츠러든 것 같다. 매번 인사 때마다 마음에 둔 후보를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대통령은 청문회와 여론의 역풍이라는 장벽에 부닥치자 고심한 듯하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제시한 공직 후보자에 적용할 200가지 인사 기준이 당사자들을 더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해진다. 


구경꾼들은 제시된 200가지 잣대를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다른 쪽에서는 가혹하고 비현실적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외제차를 사 봤느냐는 질문은 자리에 따라 통상마찰의 소지를 던질 수 있다. 정신병 관련 치료를 해 봤느냐는 질문은 심각한 사적 영역 침해라는 시비를 낳을 법하다. 


중요한 건 논란만 벌이지 말고 실제 한 번이라도 적용해봐야 한다는 거다. 


공직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치부가 까뒤집혀 창피만 사고 낙마할까봐 나서기를 꺼린다는 현실은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아니 슬퍼지게까지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정했던 지식경제부와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들이 자진 사퇴하자 퇴임시켰던 장관들을 다시 불러 "당분간 유임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미 교체하기로 했던 두 장관이 복귀했더라도 실제로는 비워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 


나는 이런 꼼수가 대통령을 대신해 해당 업무 행정 권한의 책임을 주는 각료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감히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 외에도 외교부 장관, 지경부 장관, 문화부 장관, 국민권익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장, 금통위원, 국세청 차장 등 `공석`이거나 `사실상 비어 있는` 공직자리를 하루라도 빨리 채워야 한다. 이 많은 자리를 비워 두고도 국정 수행에 차질이 없고, 국민 생활에 불편이 없다고 자신하는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이들 자리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누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나 비워 둘 때나 별 차이가 없다면 그들에게 지급되는 국민 세금만 축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뭐라고 반박할까. 


백 번 양보해서 해당 자리에 누가 있느냐 없느냐에 상관없이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대한민국 공직사회가 그렇게 정교하고 체계적이라면 누구를 앉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공직사회의 인사가 국민들에게 관심을 끌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공직에 누가 오는지 언론에서 검증할 필요도 없고, 굳이 도덕성 시비를 걸지 않아도 되는 태평성대 같은 시절을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윤경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