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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 쇼 미 스테이트를 아십니까 (2011.12.7.)

joon mania 2015. 8. 8. 22:48

매경포럼 / 쇼 미 스테이트를 아십니까 (2011.12.7.)




미국 중부에 있는 `미주리 주`의 별칭은 쇼미 스테이트(show me state)다. 


뉴욕주를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 플로리다주를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로 각각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각주의 별칭에는 나름대로의 역사가 담겨 있다. 미주리주는 북미 대륙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동서를 관통하는 70번 고속도로가 미주리주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를 막판까지 끌고 가 역전승을 이뤄낸 카디널스팀의 근거지인 세인트루이스가 중심도시다. 세인트루이스에는 서부 개척 때 동부에서 서부로 찾아가는 이들이 반드시 통과했어야 한다는 거대한 아치가 있다. 동서의 관문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이렇게 접경 지역으로 대접받은 덕에 남북전쟁 때 남군과 북군이 미주리주를 빈번하게 바꿔 차지했다. 심한 경우 하룻밤 새 주도권이 넘어가기도 했다. 남군이 완장을 차고 있다가 밤 사이 자고 나면 북군이 빼앗아 가는 꼴이다. 주민들은 섣불리 한 쪽 편을 표나게 들었다가는 다음날 곤욕을 치렀다. 죽임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살기 위해서는 이기는 편에 붙어야 했다. 그것도 싸움의 결과를 지켜본 뒤에 결정했다. 그 전에는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를 감췄다. 


낯선 이들은 자연스레 경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이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플리즈 쇼 미 유어 아이덴티티.`(Please, show me your identity.) 


정체를 밝히라는 얘기다. 어느 편인지 까보라며 경계부터 한 뒤 상대를 맞는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남북전쟁 때의 미국과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두어 달 전 진행한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나 정치판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캠페인은 여야 간의 대결을 뛰어넘어 보수와 진보의 결전으로 치러졌다. 두 후보를 지지하는 각각의 세력은 상대편에 대해 사사건건 비난을 퍼부었다. 


일각에서는 내놓고 이런 상황을 부추겼다. 한쪽을 질타하며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상대를 윽박지르면서 자기만 옳다고 강변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입장에 동조하라고 종용했다. 조용하게 앉아 있으면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굳이 묻기까지 했다. 


포용은 뒤로 내팽겨졌다. 중용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논어에서는 중용을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다. 극한으로 치닫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일견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때와 처지를 가려 가장 적절한 위치에 서는 것이 중용의 구체적 실천이라고 제시한다. 


이젠 정치권을 뛰어넘어 사회단체나 친목모임에서조차 편가르기가 횡행한다. 


하지만 이런 몰아붙이기가 거세지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보통사람이 많다. 격론을 벌이는 자리를 아예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게 조용하게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모습이다. 


세상에는 양극단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인지. 자기편이 아니라면 왜 그리 무차별하게 공격을 퍼붓는지…. 


보수의 편에 설 때도 있고, 진보를 옹호할 때도 있다. 결코 변절이거나 배신이 아니다. 이념의 잣대를 모든 사안에 다 들이대서는 안 된다. 딸을 가진 부모는 여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적극 동조할 거다. 그렇더라도 남녀관계에 마냥 개방적인 세태에는 절대로 손사래를 칠 거다. 딸 키우는 부모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양면의 심정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렇게 남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여유가 아쉽다. 


중도파를 회색주의자로 몰아버리는 극단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유연성을 가진 사회,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중도파에게도 자유롭게 숨쉴 공간을 허(許)하라! 


[윤경호 논설위원 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