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오세훈 前 시장의 기여 (2012.3.20.)
"예정 없던 서울시장 보선때
젊은이들 투표로 분풀이해
세계 휩쓸었던 오큐파이 운동
한국서는 슬쩍 넘어갔지만
기득권 장벽 더 공고해지면
다시 불붙을 개연성 경계해야"
선배의 한마디에 무릎을 쳤다.
"지난해 세계를 풍미했던 `오큐파이 무브먼트`(occupy movement)가 왜 한국에서는 슬쩍 비치고 시들했던 것 같으냐. 그건 역설적이게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덕분이다."
무상급식 투표에 자리를 건 오세훈의 무모한 베팅에 느닷없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정치권에는 발을 들이지 않던 안철수와 박원순이 등장했다. 안철수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은 박원순쪽 선거운동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 20~30대는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 집권당과 기득권 세력에 대해 투표라는 행위로 응징을 하는 듯했다.
지난해 세계는 연초부터 들썩였다. 중동 국가에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번졌다. 이집트 리비아 등 철옹성 독재자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급기야 자본주의의 첨병 미국에서조차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며 시위의 화살이 던져졌다. 탐욕의 화신으로 설정된 금융자본가들을 겨냥했다. 99%의 `못가진 이`들은 소외되고 1%의 `가진 자`만을 위한 세상이라고 욕했다.
한국이라고 젊은 세대가 이런 운동에 솔깃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오세훈이 만들어준 서울시장 보선에서 선거운동과 투표를 통해 울분을 표출한 거라는 얘기다. 더구나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일궜으니 시원한 분풀이를 한판 해버린 셈이다.
청년 실업률 8.3%라는 통계청의 공식 수치를 비웃듯 대학 졸업 후에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노는 20대가 넷 중 하나꼴이다. 다소 과장되지만 현실이 그렇다.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잃게 만들면 그건 죽은 사회다. 1% 대 99%라는 편가름에 왜 흔쾌하게 동의하고 그 시위에 몸을 던져 동참할까.
젊은이들의 화살 과녁은 한 곳에 계속 고정돼 있지도 않는다. 월가 점령 시위의 용어와 아이디어를 처음 제기한 캐나다 잡지 `애드버스터스`의 칼레 라슨 편집장이 내놓은 진단은 흥미롭다. 라슨 편집장은 한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가 처음 등장했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월가 점령 시위에 동조했을 성향의 젊은 세대가 그를 지지하고 박수쳤을지 모르지만 이번 2012년 재선 캠페인에서는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 말 우리의 대통령 선거에서 560만여 표 차이라는 결과가 나온 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기업경영자 출신 이명박 후보에 대한 젊은층의 기대가 담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4년 전엔 이 대통령에게 변화를 갈망하며 표를 던져줬던 젊은 세대들이 이내 실망해 등을 돌려버렸다.
평균 결혼 연령이 늘어난 건 개인의 선택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도 크다. 대출 받아 사 놓고 평소에 갚아가기에는 집값의 절대가격이 너무 높다. 부모로부터의 도움이 없는 한 원룸에서 월세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들에게 결혼은 부담스럽기만 한 게 요즘 우리 사회다.
맨손으로 시작해 기업을 일구고, 주경야독으로 관가에 급제해 출세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산업화시대의 신화처럼 들릴 뿐이다. 개천에서 용 나오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낙담하는 세대가 갈수록 늘어난다.
개인의 능력을 따지고, 노력 부족을 탓하는 걸로는 설득되기 힘들다. 사회 구조적으로 장벽이 두터워졌고 기회가 막혀 있다면 뚫어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내세우는 한 누구에게나 도전의 기회가 열려 있어야 정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19대 국회의원 총선도 젊은이들에게는 서울시장 보선처럼 오큐파이 무브먼트를 대신할 놀이판이 될지 궁금하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다시 한번 분노를 잠재우는 씻김굿 역할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고 나서도 기득권 세력의 방어벽이 더 공고해지고, 변화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쳐진다면 한국에서도 오큐파이 무브먼트는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을 거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