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저금리라는 포퓰리즘 (2012.5.29.)
joon mania
2015. 8. 8. 22:54
매경포럼/ 저금리라는 포퓰리즘 (201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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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8년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강변했다. 저금리 정책이 금융위기의 방아쇠였던 주택경기 거품을 초래한 건 아니라는 거다. 주택가격은 금리를 내리기 전인 1990년대 말부터 올랐고, Fed가 2004년 금리를 올린 후에도 계속 올랐다는 것이다.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2004년까지 완화 정책을 폈다. 경기 경착륙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버냉키 역시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2008년 12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0~0.25%)으로 낮췄다. 이제는 아예 2014년 말까지 끌고 가겠다고 공언해 놓았다. 그린스펀과 버냉키의 저금리 정책은 시장에 건전하지 못한 기대를 형성시켰다. 이제는 경기 침체로 실업이 늘면 중앙은행이 저금리와 유동성 지원에 나설 거라고 시장에서는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길들여져 있다. 버냉키의 강연 사흘 뒤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로부터 터져나왔다. 미국 중앙은행이 주최한 한 콘퍼런스에서다. 그것도 버냉키를 면전에 앉혀 놓고 퍼부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저금리는 투자를 끌어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성은 물론 자원 배분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성장 잠재력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하이메 카루아나 총재도 "저금리 정책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손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또다시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수장들의 저금리 관련 발언을 보면서 금융위기를 예언해 유명해진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다시 떠올렸다. 라잔은 2010년 7월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장기 저금리 정책이 제2의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지 봐야 한다며 때를 놓치지 말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펴낸 저서 `폴트라인(Fault Lines)`에서 라잔은 저금리 정책을 체제 유지를 위한 이해 당사자 간 야합의 산물로 규정했다. 수익이 나면 화끈하게 보상하고 손실이 나면 가벼운 징계에 그치는 인센티브 시스템은 금융권의 리스크를 용인했고 탐욕을 키웠다. 이런 눈앞의 꿀단지는 결국 `폴트라인`, 즉 지진(경제 위기)을 유발하는 단층선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폴트라인은 수출국들의 과도한 자본 축적에서 비롯된 위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급격하게 늘어난 각국의 외환보유액은 투자처를 찾아 세계를 헤맸고 소득불평등 문제를 대출 확대로 해소하려 한 미국으로 몰렸다. 국제 투자은행들이 고안해낸 파생상품이나 모기지증권이 매개체 역할을 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치과의사의 여윳돈이 미국 네바다주의 가난한 대출자에게 흘러갔다고 라잔은 비유했다. 지난 4ㆍ11 총선 전 눈만 뜨면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봐야 했다. 여야 불문이었다. 미국 같은 부자나라에서는 의료 교육 보육 등에 돈을 퍼붓는 보편적 복지확대 정책을 펴는 단계에서 이미 벗어났다. 세련되고 간접적인 카드를 쓴다. 저금리 체제다. 그게 최고의 포퓰리즘이다. 한국은행은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11개월째 연 3.25%로 동결했다. 적정금리를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테일러 준칙` 공식으로 산출해 볼 때 한국의 금리는 연 3.95%는 돼야 한다고 한다. 저금리라는 최고의 포퓰리즘 샴페인에 취해 있다가 나중에 그것이 `폴트라인`이었음을 느끼는 순간 다른 형태의 위기에 이미 빠져 있다는 걸 아는 날이 올 거다. 당대의 골칫거리를 당장 해결하지 않고 후세에게 떠넘기는 게 저금리 체제다. [윤경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