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CAS를 아십니까(2012.7.3.)
런던올림픽서도 판정 시비로
제2의 김동성ㆍ양태영 나올 터
일 터진 뒤에 볼멘소리 말고
찔끔 가동하다 식물상태 만든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 키워
인력 양성하고 규정 익히길"
어제 끝난 유로2012에 한 달여 정신을 못 차렸다. 스페인의 우승까지 주요 경기마다 신새벽을 맞으며 지켜봤다. 붉은 눈으로 출근해 힘든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이젠 런던올림픽이 기다린다. 이달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울까.
올림픽 하면 김동성이 먼저 생각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대회 때다. 쇼트트랙 1500m 결승전에서 1위로 들어와놓고 금메달을 놓쳤다. 주심의 실격 판정 때문이었다. 2위였던 미국의 안톤 오노는 할리우드액션으로 더 꼬이게 만들었다. 한국은 뒤늦게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 주심이었던 제임스 휴이시에게는 심판활동 2년 정지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이를 계기로 국제빙상연맹에도 비디오 판독 제도가 도입됐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체조 금메달을 날렸다. 이번엔 양태영이다. 중간합계 1위를 달리다 평행봉에서 주심의 어처구니없는 점수에 밀려났다. 미국의 폴 햄은 안마에서 엉덩방아까지 찧었는데도 금메달을 가져갔다. 국제체조연맹이 잘못을 인정했고,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양태영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치켜세웠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스포츠계엔 분쟁 판정을 담당하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있다. 1984년 IOC 산하로 탄생했다. 첫 두 해엔 단 한 건의 제소도 없었다. 1993년까지 연평균 겨우 7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국제스포츠계는 CAS에 분쟁 해결의 우선권과 전속관할권을 갖도록 해 힘을 실어줬다. 선수들에게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관할을 인정하는 서약서를 제출해 따르도록 했다. 1994년엔 IOC에서 완전 독립된 기구인 국제스포츠중재위원회(ICAS)로 발전됐다. 이제는 매년 200여 건의 분쟁 해결 제소가 접수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6년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한체육회 산하다. 하지만 2009년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가 합쳐지면서 관련 규정이 삭제됐다. 2010년부터는 예산 지원도 중단했다. 성과 없이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기업 경영자 출신인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실적주의 잣대다. 2003년 비슷한 기구를 출범시킨 일본은 실적 미흡에 상관없이 계속 지원했고, 2009년엔 별도 법인으로 오히려 독립시켰다.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를 혼수상태에 빠뜨린 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제2 김동성 사태가 또 발생했다. 1위로 들어온 한국팀은 실격 판정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중국에 금메달을 바쳤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심판 판정을 둘러싼 분쟁이 줄을 이을 것이다. 국제스포츠중재위원회는 올림픽 기간에 특별중재부(Ad hoc Division)를 따로 둔다. 모든 분쟁을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한체육회가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에 스포츠중재 관련 전문가를 포함시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엔 당시 가동되던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의 안동수 위원장(전 법무부 장관) 연기영 위원(동국대 교수) 이애리사 위원(전 태릉선수촌장) 등이 현지까지 갔는데도 대한체육회에서 활용하지 않았다.
심판 판정 시비가 생기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일단 현장에서 구두로, 8시간 안에 서면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제출하고 나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24시간 안에 판결토록 돼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법과 규정을 제대로 알고 상대해야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목소리를 내려면 평소에 실력을 쌓아둬야 한다. 식물상태로 만들어버린 스포츠중재위원회를 활성화하는 게 시급하다. 대한체육회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제2 김동성과 양태영 사태를 또 겪고 나야 나설 것인가.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