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에 비쳐본 한국경제

<국제뉴스에 비쳐보는 한국경제> 연재를 시작하며 (2013.4.15.)

joon mania 2015. 8. 8. 23:18
<국제뉴스에 비쳐보는 한국경제> 연재를 시작하며 (2013.4.15.)
국제 뉴스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미치는가를 실감한 것은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때였다. 

2008년 9월 13일. 토요일 아침에 느긋하게 펼쳐본 워싱턴포스트의 1면 기사에서 필자는 뭔가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는 기분을 느꼈다. 휴일이었고, 한국도 추석 연휴여서 쉴수 있으니 모처럼 여유를 부리던 때였다.세계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유동성 위기에 파산직전이고, 다른 금융회사도 벼랑끝 위기에 몰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이어진 후속 사태와 줄줄이 쏟아진 대책 발표에 몇개월간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특히 미국 금융 당국이 서울,도쿄, 상하이 등 아시아의 증권시장 개장에 맞춰 대책을 내놓은 일요일 오후에는 무슨 메가톤급 카드가 발표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이때 시작된 게 아니었다. 위기의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었고 속으로 골병 들어가고 있었다. 리먼 브러더스라는 공룡의 몰락 전엔 빙산의 윗부분만 보였던 것이다. 

이미 1년 반쯤 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유령이 주택시장을 휘젓고 있었다.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라는 뜻이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게도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경기가 좋을 때는 집값이 올라 대출이 부실해질 가능성은 낮았다.하지만 집값 거품이 무너지면서 부실이 속속 표면화됐다.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업체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했다.8월에는 10위권 업체 아메리칸홈모기지가 뒤를 이었다.위기를 알리는 충분한 전주곡이었다.이후 1년 만에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라는 엄청난 파국을 맞았다. 

그날 워싱턴포스트 1면 기사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가능성을 전했다.그외에도 미국 최대 보험회사 AIG, 수신고 4위 시중은행 와코비아, 저축은행업계 1위인 워싱턴뮤추얼이 줄줄이 유동성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루 뒤인 2008년 9월 14일 오후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일요일이었지만 수뇌부들이 모여 전격적으로 처리했다.이후부터 은행 간 자금 거래가 전면적으로 막혀 버린 사상 초유의 금융 위기가 본격화됐다.워싱턴포스트가 거론한 4개 금융회사는 차례로 정리됐다.와코비아와 워싱턴뮤추얼은 각각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AIG는 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주식을 넘기면서 사실상 국유화됐다.위기는 증폭됐다. 그에 맞춰 메가톤급 대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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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눈을 2013년 현재 시점으로 돌려보자. 

지난 2월 공개된 미국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의 1월 정례회의 의사록 내용이 공개되자 전 세계 주식시장을 흔들었다.국제유가와 금값도 요동을 쳤다. 일부 위원이 미국의 양적완화(Quantative Easing)를 중단하거나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었다.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 방식으로 매달 850억달러의 돈을 풀고 있는데 인플레이션 부담을 감안해 이제 이를 중단할 시점이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할 경우 각국에서 긴축 기류가 강하게 형성될 것이니 세계 경제에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불가피할 것이다.주식시장에는 이런 걱정이 즉각 반영됐다. 의사록이 공개된날 미국 증시는 1% 넘게 하락했다. 아시아 주식시장도 모두 요동쳤다. 닛케이지수, 상하이종합지수, 한국 코스피가 나란히 곤두박질쳤다. 

주식시장만이 아니었다.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의 3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3개월여만에 가장 큰폭으로 떨어졌다.5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금값도 온스당 160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연준의 양적완화가 조기에 종료되고 유동성 공급이 줄면 경기 회복세도 주춤해져 유가 수요를 감소시킬걸로 본것이다. 양적완화가 끝나면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니 그동안 달러 대신 선호했던 금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다. 

미국 연준의 회의록 내용 하나가 이렇게 전 세계 주가,유가,금값을 뒤흔들고 그 여파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미쳐오는게 오늘의 세계 경제 구조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들어보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던지는 파장이다.아베 총리는 일본중앙은행에 돈을 무한정 풀도록 함으로써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일본기업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인플레 목표를 2%로 높이겠다며 마구 돌진중이다. 일본판 통화전쟁이다.자신의 뜻을 따르는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총재를 일본은행 총재에 임명해 칼을 줘어줬다.덕분에 달러 대비 엔화값은 약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지난해 9월 엔화가치로 최고수준에 비해 이후 6개월여만에 20%나 떨어졌다.달러당 100엔 돌파를 점칠 정도다. 

아베노믹스는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더라도 내 나라 먼저 살리고 보자`는 것으로 이른바 `이웃나라 거지만들기`(beggar-thy-neighbour) 정책이다. 이에따라 지난 2월 16~1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굛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이에 대해 적절하게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하지만 G20 회의에서 발표된 성명에서는 "경쟁적 평가 절하를 자제하고,환율을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표현했지만 일본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오히려 "통화정책은 국내 물가 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써야 하고, 국내 목적을 위해 수행한 통화정책이 다른 나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하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적시해 국내용이라고 강변하는 아베노믹스를 묵인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받아들였다.미국과 유럽에서 경쟁적으로 돈을 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만 비난할수 없는데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지지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한국에도 여러 부문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고 경쟁 관계인 우리 기업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전인 지난 2월 20일 무역협회 회장단과 만나 "환율 안정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손해보지 않도록 선제적,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글로벌 통화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일본의 엔저 공세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니 간단한 언급이 아니었다.월스트리트저널(WSJ)등 해외언론은 당장 비중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국정을 운영할 최고 지도자가 환율 같은 민감한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뱉었으니 향후 외환정책과 통화정책을 담당할 실무자들에게는 이만저만 부담을 준게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여러 정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발언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 해석을 낳을수 있어서다. 언급된 `선제 대응`은 원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 직접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수 있다. 또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시사로도 해석될수 있다.급격한 자본유출입을 막을 토빈세(외환거래세)나 금융거래세 같은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것 아니냐는 추측으로도 연결될수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향후 정책과 시장의 방향에 `결정적인` 좌표를 설정한 꼴이니 정치가 경제를 압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