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智園] 선박평형수 (2013.8.8.)
짐 싣고 바다를 건너다니는 화물선에는 바닥에 물을 채우는 공간이 있다. 실을 화물이 없을 때 균형을 잡기 위해 넣는 물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를 선박평형수(Ballast Water)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한 해 50억t 이상의 바닷물과 7000여 종의 해양생물이 전 세계로 이동된다. 난류가 흐르던 바닷물을 차가운 지역으로 옮겨가 풀어버리는 꼴이니 그 안에 있던 미생물이 해양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건 당연하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04년 `평형수 관리 협약`을 마련했다. IMO의 인증을 받은 선박평형수 처리시설을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2014년 말경부터는 협약이 발효될 것으로 예상돼 이후엔 시설을 장착하지 않고는 운항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6만8000여 척의 선박이 대상이다.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것이지만 뒤집어보면 2019년까지 80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된다. 설비를 설치하는 데 배 한 척당 규모에 따라 6억~12억원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장서서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2013년부터 건조된 선박은 설비 장착을 이미 의무화했고, 기존 선박은 용량별로 2014년 또는 2016년부터 장착하도록 했다. IMO 기준으로는 ℓ당 미생물 1000마리를 허용하는데 미국은 이를 1000배나 강화해 이르면 2016년부터 적용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 화물선의 60%가 미국 연안에 들어가니 여기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놀랍게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상위 그룹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해당 시장 수주의 54%를 우리 업체들이 따냈다. 세계적으로 IMO로부터 31개 업체만 인증을 받았는데 국내 기업이 11개에 이른다. 세계 1위 업체인 테크로스를 비롯해 엔케이, 파나시아 등이 3위까지 올라 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시장을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국내외 대형업체들이 이미 뛰어들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이 시장에서 우리 업체의 선점 유지를 위해 공을 들이겠다고 한다. 업체들에 5년간 연구개발(R&D) 예산을 밀어주고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화하도록 해보겠단다. 80조원의 새 시장이라면 작지 않은 블루오션이다. 창조경제는 이런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만 창조경제를 되뇌일 게 아니다. 해양수산부와 관련 업체도 창조경제에 숟가락을 올릴 여지가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