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기술료(2013.10.15.)
정부지원 R&D 성공후 일부 반납
관행적으로 걷지만 어디 쓴지 몰라
내년부터 세입에 포함키로 했으니
엄격한 사용기준.관리규정 만들라
기획재정부가 나섰다.국가재정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세입세출외로 운용된 기술료 수입을 이제는 세입에 끌어가겠다는 것이다. 국고로 환수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넣겠다는 얘기다. 한해에만 2000억원은 될 것으로 계산한다.지난달말 재정개혁위원회에서 이런 방안을 보고했다.공약재원 마련을 위한 세외수입 확대 방안의 하나인데 하여튼 잘한 결정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8월 하순 기술료제도 공청회를 열었다. 점차 축소해가겠다고 먼저 엎드렸다. 폐지를 주장하는 업계의 요구나 그동안 쓰임새의 불투명성에 대한 빗발친 지적을 감안한 결정이다. 연구자나 기술개발 기여자에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세우고,보상금 지급기준 및 절차에 대한 공통 가이드라인도 만든다고 한다. 조만간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에 올려 최종 확정하겠다고 했다.장기적으로는 기술료를 모아 펀드로 조성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술료'란 정부에서 지원받은 R&D(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 과제를 맡은 곳이 지원비의 일부를 반납하는 제도다.지적재산에 대한 이용 댓가를 의미하는 로열티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게 아니다. 정부출연금 또는 지원비의 20~40%를 환수해간다.기업이든 연구기관이든 다 내야한다.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소기업엔 10%로 낮췄다. 1980년대 정부 R&D 예산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에 다음 과제 재원확보를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일종의 `성공부(成功附) 반납금(refund)' 이나 `환불금(rebate)' 개념이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니 당연히 공짜로 줘서는 안될 일이다.사후에 어떤 식으로든 찾아오는게 맞다.
현행 제도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나눠먹기가 횡행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연구개발 과제를 성공해야 기술료를 내도록 하는데 성공판정 비율은 평균 90%에 달한다.정부 공식 통계다. 성공을 거둔 것으로 꾸며야 정부나 과제를 따낸 쪽 서로 좋기 때문이다. 10개중 1개 정도나 될까 말까 하는게 벤처 속성인데 이렇게 높은 성공률이란 `눈가리고 아옹'에 다름 아니다.연구개발 과제 성공이 수익창출이나 사업화로 연결되느냐는 전혀 별개다.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료를 내기위해 처음부터 지원금 일부를 적립해뒀다가 성공 판정을 받고난 후 기술료로 낸다.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수익화에는 실패한 경우 속으로는 손실을 보면서 기술료를 갖다 바쳐야 하는 속앓이를 한다.다음 과제에 또 신청하려면 성공 실적을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아진 기술료는 지난 2009년에 이미 4000억원을 넘었다. 대학과 공공연구소 등 275개 공공연구기관에서 거둔 기술료만 2011년 1258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기술료에 대한 명확한 사용기준이나 관리 규정이 제대로 없다.국가재정법상 예산총계주의의 예외사항이어서 징수액 전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다. 어디에 얼마씩 다시 투자됐는지 명확한 통계를 찾기 어렵다.해당부처,정부출연연구기관,대학에서 감사도 받지 않고 나눠먹는 돈이 돼버렸다. 개인주머니로 들어갔는지,해당 부처에서 눈먼 돈으로 전용됐는지 가려지지 않았다.
기술료 본래의 취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심사과정에서는 기술의 창의성, 정책적 중요성 등 본래 취지보다는 기술료의 정부환수금 액수에 따라 연구개발과제 선정대상과 규모가 영향을 받는다. 기술료가 많이 걷히는 과제는 확대 시키고,잘 걷히지 않는 분야는 축소하고 있으니 할말 없다. 창조경제의 창시자로 꼽히는 영국의 경영전략학자 존 호킨스 박사는 지난 5월 방한때 강연에서 "벤처 생태계의 인프라가 변하지 않는 창조경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기술료 제도는 창조경제시대 벤처 생태계 인프라 개혁을 위해 우선적으로 정비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