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다시 읽는 `분노의 포도` (2013.12.31일자)

joon mania 2015. 8. 10. 15:53
[매경포럼] 다시 읽는 `분노의 포도` (2013.12.31일자)
  

한 해를 마감하는 날 칼럼이니 어떤 주제를 택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새해로 넘어가는 희망을 다뤄야 하는데 아쉽다. 올해를 돌아보면 국정원 댓글에서 시작해 철도 파업으로 끝나는 듯하다. 경제는 지표와는 따로 논 최악의 체감경기로 압축된다. 

이런 정치 갈등과 활력 잃은 경제에 치여 곪아 있는 게 일자리 문제다. 가장 심각한 건 청년 실업이다. 대학가에 확산된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에서 그들은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주지 않았나. 

한국은행이 낸 보고서에선 일을 하지 않거나 교육훈련도 받지 않고 일할 의사도 없는 청년층이 72만4000명에 달한다고 분류했다. 이른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다. 다른 통계에 따르면 대졸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52%가 백수다. 취업 재수생이거나 대학원 진학 준비 중이거나 아예 놀고 있다. 이런 대목을 다 반영해 실질적인 체감 실업률을 산정하면 얼마로 나올지 참 난감하다. 

이달 초 발표된 올해 11월 취업자는 2553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만8000명 늘었다. 덕분에 전체 실업률은 0.1%포인트 낮아졌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14개월 만에 최대치라고 내세우지만 구멍이 많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되레 0.8%포인트 올랐다. 

우리의 실업률은 일할 의사를 갖고 직업을 찾아다닌 경우에만 산정된다. 기존에 써온 통계 방식이지만 허전하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15세 이상의 노동가능인구는 수입이 있는 일에 종사하거나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경제활동인구와 경제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경제활동인구에서만 취업자와 실업자를 구분한다. 비경제활동인구에는 가정주부, 학생, 연로자, 심신장애자 외에도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자 등이 포함돼 착시를 부른다. 구직을 포기한 것으로 분류되면 실업률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결과까지 나온다. 

대학에서는 졸업한 직후 취업이 안 될 것 같으면 마지막 학기를 휴학하거나 대학원에 적을 둔 채 대기한다. 위장된 취업 재수다. 지방 대학에서는 공식적으로 졸업유예제가 활용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8년에 등장했는데 다시 살아났다. 최대 4학기까지 졸업을 미루도록 해주는 대학도 있다. 교육부 통계로도 대학생은 평균 5.79년 만에 졸업하고 있다. 인문사회 계열은 평균 5.71년, 공학 계열은 6.18년이다. 대학이 4년제에서 6년제로 변해버렸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장치도 강화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 정도로는 청년들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데 역부족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경제를 튼실하게 일궈 규모를 키우는 게 첫째다. 내년 성장률 목표치 3.9%라도 달성하면 선방이다. 해마다 잠재성장률을 뛰어넘어야 할 텐데 난망이다.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의 자세에도 문제는 많다. 기능직은 외면하고 사무직만 선호한다. 단순노무직이나 3D 업종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떠넘긴다. 중소기업은 외면한 채 대기업이나 공기업만 들어가려 한다. 스스로 눈높이를 먼저 낮추면 일자리를 더 찾을 수 있다. 

요즘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다시 읽고 있다. 지금을 대공황 시기와 비교할 수야 없지만 실업 문제라는 화두는 같다. 스타인벡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패배의 빛만 보이고 영혼 속에는 분노만 번득인다"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면 사회적 위기로 가는 건 시간문제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있는 분들, 제발 직시하시길. 내년 말 이때쯤엔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해주시길.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