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智園] 길거리 응원 (2014.6.19.)
2014 브라질 월드컵 한국 첫 경기인 러시아전 여운이 아직 짙게 남아 있다.
어제 전국 27곳에서 10만여 명이 함께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붉은악마가 주최한 광화문광장과 월드싱어 싸이가 이끈 영동대로 열기는 대단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치르던 1997년에 시작됐다. 그해 10월 11일 오후 지역 B조 6라운드 카자흐스탄전 원정경기였다.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 모여든 이들은 건너편 동아일보 옥상에 설치된 전광판 화면을 보며 `이겨라`를 외쳤다. 일부 붉은악마 회원 외에 집에 가던 고교생이나 엉겁결에 나온 근처 회사원이 많았다.
이날 길거리 응원은 보름 전인 9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한ㆍ일전 승리의 후광효과였다. 선취골을 내주고도 서정원의 헤딩슛과 이민성의 중거리슛으로 감격적인 2대1 승리를 거머쥔 `도쿄대첩`의 짜릿함을 붉은악마들은 길거리 응원으로 이어갔던 것이다. 태극기를 망토처럼 몸에 휘감은 모습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길거리 응원 진수는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 보여줬다. 서울시청 앞에는 40만여 명이 한꺼번에 모였고, 7차례 경기에 연인원 2400만명이 전국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다음주에 알제리ㆍ벨기에와 각각 예선전을 더 치러야 하니 두 번 더 있을 길거리 응원에서 다시 하나 됨을 즐길 수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의 모태는 PC통신 하이텔 축구동호회다. 그들은 1995년 12월 축구 응원문화 개선을 위한 회의에서 만든 `칸타나 선언`까지 채택하며 체계화를 위한 기틀을 다졌다. 이어 1996년 여름 한ㆍ중 국가전에 회원 300여 명이 붉은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잠실운동장에서 단체응원을 선보였다.
붉은악마라는 이름은 1997년 8월에 채택됐다. 일본 국가대표 서포터스인 `울트라닛폰`은 1992년 만들어졌으니 우리가 한참 늦었다. 중국에도 `공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인 추미(球迷)라는 서포터스가 있다.
국가대표팀 축구는 더 이상 11명만 뛰는 경기가 아니다. 그라운드 밖에 선수 1명이 더 있다. 하나가 된 응원단이다. 12번째 선수는 붉은악마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