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실종되고 밥그릇 싸움하는 정책금융 개편 (2013.8.1.)
박근혜정부 출범 후 의욕적으로 추진되는 정책금융 개편이 당초 의도했던 방향을 잃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정책금융 개편을 우리금융 민영화,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과 함께 반드시 처리할 우선과제로 내걸었다. 업무 중복에 따른 비효율을 줄이고 꼭 필요한 곳에 정책자금을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대외업무는 수은으로, 대내업무는 산은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수요자인 기업 관점으로 개편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원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 추진은 중복 기능 정리였는데 본질적인 문제 제기는 사라졌다. 반대쪽에서는 두 기관 통합 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따라 기업 신용공여 한도가 29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정책자금 지원 축소가 9만여 명에 이르는 신규 고용 위축을 낳는다는 논리까지 펴고 있다. 수출입은행 업무와 무역보험공사 무역보험을 일원화하려던 작업은 재계와 무역보험공사를 산하에 두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측 반발로 무산될 판이다. 박 대통령 지시 뒤 급조된 수요자 간담회에서 대한상의는 '다양한 정책금융이 존재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 이런 의견 표명은 혼란만 줄 뿐이다. 정책금융 개편으로 수출기업 애로를 해결해주고 편의를 도모하겠다는데, 마치 수혜자들이 반대하는 꼴이니 국민을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전제로 2009년 분리됐다가 다시 통합을 거론한다. 무역보험공사도 1992년 수출입은행에서 떨어져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분리와 통합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일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통합 논의 속에 산업계 최대 현안인 STX그룹에 대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뒷전에 밀리고 있으니 정책금융기관 본연의 기능을 외면하며 벌이는 개편작업이 무슨 소용 있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정책금융 개편의 칼을 왜 빼들었는지 새겨보기 바란다. 중복 기능을 정리하고, 민간 부문과 마찰을 최소화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천명했음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 발언은 수요자를 배려하라는 것이지 수요자들에게 휘둘리라는 게 아니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