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가 기록물 가운데 백미는 왕조실록이다.
1392년부터 1863년까지 왕들의 통치 행위를 담은 문서다. 원문 분량만 4809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책자다.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져 있는 승정원일기라는 기록도 있다. 비서실 격으로 왕명 출납을 맡은 기관이었으니 임금과 신하의 대화까지 생생하게 써놓았다. 태조부터
선조까지 기록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인조(1623년)부터 순종(1910년)까지 288년간의 기록만 남아있는데도 2억4250만자에
이른다. 구술하듯 표현된 문체에다 빨리 받아쓰기 위한 초서로 작성돼 있어 웬만한 한학 실력으로도 해독이 쉽지 않다.
영조(1760년)부터 순종(1910년)까지 151년간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 내용을 작성한 일성록도 있다. 영조 때는 왕의 개인
일기였으나 정조 때부터 국정 기록으로 바뀌었다. 대상 기간은 짧지만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덕분에 분량만 2329책, 6000만자에
이른다.
조선왕조의 실상을 담은 이런 귀중한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부 산하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에 의해서다.
고전번역원의 전신은 민족문화추진회라는 단체였다. 1965년 11월 월탄 박종화, 외솔 최현배, 두계
이병도, 노산 이은상 등 당대 국학 원로들이 모여 만들었다.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 발전을 위한 연구를 목적으로 내걸었는데 한자로 된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 주였다. 1972년 시작해 1993년 완성된 조선왕조실록 번역은 이들의 작품이었다.
2007년 11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제정하면서 민족문화추진회는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재출발했다. 42년간 이어진 민간 주도의 고전 번역 사업이 이때부터 국가 지원을
받는 차원으로 격상된 것이다. 지난해 취임한 이명학 원장이 사업비 200억원을 확보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 진관동에 신청사도 짓는다.
한국고전번역원은 현재 조선왕조실록 재번역과 승정원일기 및 일성록을 번역하고 있다. 1994년부터 시작한 승정원일기 번역은 전체
2449책 중 이제 765책을 마쳤으니 17%의 진척률이다. 담당 연구원이 평생을 바쳐야 할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헌신적인 작업이 고전의
향기를 후손도 맡게 해주고, 인문학의 꽃도 피울 것이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고전 번역 50년을 맞는 올해를 재도약의 분기점으로 만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