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FTA 뒤집어보기(2015.10.20.)

joon mania 2015. 10. 19. 18:20

[매경포럼] FTA 뒤집어보기(2015.10.20.)


FTA는 본래 체결국간 시장 선점 

자유 아닌 특혜협정 주장도 있어
TPP 추가로 가입해도 된다지만
누적원산지 규정 등 당장 손실 커
명분·실리 챙길 메가FTA 택하자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한 인연이 깊다고 자신한다. 워싱턴특파원 시절인 2007년 6월 30일 워싱턴 하원 캐넌 빌딩에서 열린 한·미 FTA 서명식도 눈앞에서 지켜봤다.

우리 무역은 2014년 1조987억달러로 세계 아홉 번째다. 수출만 따지면 7위다. 1조달러 이상 교역국은 9개뿐이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이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정부 차원에서 FTA 로드맵을 처음 작성한 건 2003년이었다. 일본 멕시코 아세안 등이 단기,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은 장기 추진 대상으로 분류됐다. 정작 일본·멕시코와는 아직도 체결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 이뤄냈으니 계획과는 정반대다.

FTA는 기본적으로 체결국에만 유리한 이기적인 장치다. 장벽을 해제하니 새로운 무역 창출이라는 긍정 효과를 가져온다. 양자든 다자든 끼리끼리 손잡아 비체결국보다 시장을 선점하면 된다. 반면 다른 편에서는 기존의 교역을 쫓아내는 구축(驅逐)이나 차별 같은 부작용도 낳는다. FTA를 맺은 나라와의 혜택을 좇아 이전에 비체결국과 해오던 무역을 회원국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역 전환이라고 부른다. 일부 학자는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이 아니라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한국도 쓴 경험을 했다. 멕시코가 일본과 FTA를 맺고 난 뒤 그때까지 수입하던 한국산 타이어를 일본산으로 대체했다. 25%의 관세가 사라진 후 한국산보다 비쌌던 일본산의 소비자가격이 더 싸져버렸으니 바꿀 수밖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빠진 것을 놓고 판단 실패라거나 실기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TPP 참여를 공식화하고 돌아왔지만 한발 늦은 건 사실이다. 어차피 1차 가입국들에서 비준돼 발효 후 추가로 받을 테니 꼼꼼한 전략을 짜서 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의 TPP 득실을 따져보자면 당장은 누적원산지 규정 때문에 생길 역차별이 걱정스럽다. 한국산 소재부품을 쓰던 TPP 회원국이 역내 국가로 생산기지를 만들어 옮겨갈 수 있다. 뒤늦게 개별 협상을 하려면 농산물과 쇠고기 개방에 매달려야 하고, TPP 역내 국가에 적용한 공기업 민영화 규정 같은 민감한 조건을 수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장 큰 우려는 FTA에 관한 한 그동안 튕기며 상대하던 일본에 다소 굴욕적인(?) 개별 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은 아세안+6개국 간에 투자나 서비스보다는 상품에서 관세장벽 철폐 위주로 협상을 하고 있다. 한·중 FTA도 투자와 서비스는 뒤로 미루고 상품 위주로 맺었는데 20년 뒤에야 관세가 없어지는 품목이 있을 정도다. 자세히 보면 향후 10년간 관세 인하 대상이 한국은 전체의 77%, 중국은 66%에 그친다. 20년으로 늘려도 한국은 90%, 중국은 85%만 하는 로드맵이니 수준이 결코 높지 않다.

반면 TPP를 보면 즉시 관세 철폐 비율이 미국과 일본 간에는 81.3%, 일본과 캐나다 간에는 87.5%에 이른다. 한·미, 한·캐나다 FTA에서의 즉시 관세 철폐 비율보다 각각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수출 공산품 6500여 품목 중 87%에 대한 관세가 TPP 발효 즉시 철폐된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수준 높은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의미다.

한국이 미국·중국과 각각 FTA를 맺었다고 둘을 같은 반열에 놓고 평가하면 착시를 부른다. 개방 대상이나 정도에서 분명한 수준 차이가 있다. FTA는 겉만 보고 득실을 잴 수 없다. 무역 창출과 무역 전환이라는 양면을 가졌듯 한 쪽에서 웃으면 다른 쪽에선 울 수도 있다. 상품 외에 투자와 서비스까지 두루 아우르는 개방이어야 완성도가 높다.

TPP,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에다 이미 나온 RCEP에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연결해 판을 키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래저래 한국을 기다리는 메가FTA가 수두룩하다. 우리에게 명분과 실리를 다 채울 최적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