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世智園] 쑥맥과 병신년(丙申年) (2015.12.29.)
joon mania
2015. 12. 31. 10:19
[世智園] 쑥맥과 병신년(丙申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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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미(米)와 도(稻), 보리는 맥(麥)이나 모(牟)로 쓴다. 밀은 소맥(小麥), 메밀은 교맥(蕎麥), 조는 속(粟)이다. 콩은 대두(大豆), 팥은 소두(小豆), 강낭콩은 완두(豌豆)다. 콩의 다른 표현인 숙(菽)을 붙여 강낭콩을 융숙(戎菽)이라고도 쓴다. 율무는 의이(薏苡), 들깨는 계임(桂荏)이나 명유(明油), 참깨는 지마(芝麻) 혹은 유마(油麻)라는 어려운 표현도 있다. 수수는 고량(高粱)으로, 옥수수는 옥고량(玉高粱)으로 표기한다. 수수에는 촉서(蜀黍)라는 낯선 명칭도 있다. 한국과 중국 농경사회에서는 주식인 쌀 외엔 콩과 보리가 익숙한 곡식이었다. 그런데 농사 짓는 이들에겐 눈 감고도 알아낼 콩(숙·菽)과 보리(맥·麥)를 구분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을 가리켜 `쑥맥`이라고 불렀다. 숙맥(菽麥)의 된소리 발음이다. 숙맥의 원말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이다. 콩과 보리를 제대로 변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아이가 봐도 금세 알 수 있는데 분간하지 못하니 바보라는 놀림이다. 2016년은 육십갑자로 병신(丙申)년이다. 붉은 원숭이띠 해인데 `병신`이라는 어감 때문에 벌써 패러디가 난무한다. `병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정겨운 인사를 해도 앞 단어만 부각되면서 여성들에게는 욕으로 들린다는 얘기도 있다. 120여 년 전 갑오년(1894)과 을미년(1895)에 걸친 개혁작업을 추진하던 조선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청일전쟁과 명성황후 시해라는 수모를 당하고 무너졌다. 병신년(1896)부터는 사실상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국권을 잃은 상태로 접어들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해 간 을사늑약보다 10년 전에 이미 식민지 처지로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발음만 갖고 쑥맥과 병신을 이용한 패러디가 새해를 맞는 시점에 난무하니 별로 유쾌하지 않다. 주역으로 육십갑자를 해석하는 학자 중에는 병신년을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때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병은 창조와 도전, 신은 질서와 법을 뜻한다는 것이다. 발음이 같다고 병신년을 바보나 쑥맥으로 빗대지 말고 새로운 질서 구축을 향한 기회로 받아들여보자. 개인이든 국가든 운세는 좋게 해석하고 그렇게 밀고 나가야 좋은 결과를 얻는 법이다. [윤경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