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옥죄기냐 달래기냐 결단해야(2016.2.11.)

joon mania 2016. 2. 11. 09:38

[매경포럼] 옥죄기냐 달래기냐 결단해야(2016.2.11.)

 북 도발에 신중하던 사드 급물살
망루외교로 공들인 한중관계 삐걱
이 정도면 나비효과 넘어 쓰나미
10년의 북핵정책 실패 인정하고
더이상은 딜레마에 빠져있지말자     


 북한 미사일 발사에 허둥댔던 경험이 있다. 2006년 7월이다. 워싱턴 특파원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라 뭐가 뭔지 몰랐다. 위성 발사 명분이었지만 장거리 미사일 실험이었다. 3개월 후 이어진 핵실험은 하나로 묶여 있던 패키지였다.

3년여 임기를 마칠 무렵인 2009년 5월에도 북한은 똑같이 반복했다. 두 번째엔 허둥대지 않았다. 북한이 도발할수록 미국은 더 적극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선입견이 한몫했다. 그게 북한의 노림수였다. 호된 벌로 응징할 듯하던 부시 행정부가 오히려 막후에서 더 열심히 조율을 벌였기 때문이다. 2007년 초 북·미 간 베를린 협의에 이은 2·13 합의를 보며 얻은 교훈이었다.

2009년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응 태도는 달라졌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용어로 포장한 뒤 사실은 무시하고 외면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조해 유일한 북핵 논의 창구였던 6자회담은 장기 표류 중이다.

이번 설 연휴 중 감행된 북한 미사일 발사는 여러 판을 흔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소집됐고 국제사회의 비난 성명이 잇따랐다. 한·미·일은 대응 카드를 기민하게 내놓고 있다. 한·미는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협의 공식화를 선언했다.

한·일 간에는 눈치 보던 군사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건의라지만 속도를 붙인 사드 배치는 그동안의 신중 모드를 한 방에 뒤엎는 중요한 결정이다. 1기가 한반도의 3분의 1~2분의 1 정도만 방어한다니 추가 배치는 시간문제다.

중국은 김장수 주중 대사를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북한의 핵실험 후 서먹해지고 있던 한·중 관계에 확실한 찬물이 끼얹어졌다. 미국 눈치를 보며 작년 톈안먼에 가서 시진핑과 우의를 다졌던 박근혜 대통령의 망루외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초강수로 맞서고 있다. 남북 간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키로 전격 결정하고 오늘부터 기업인들을 전원 철수시킨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비난 수위를 가득 높였다. 문제는 앞으로다. 진영논리로 책임 공방을 펼칠 거다. 안보 문제로 부각되면 이른바 북풍으로 작용할 수 있고 총선 판세를 흔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미 관계, 한·중 관계, 총선까지 흔들 위력이니 이번 북 도발은 나비효과 정도를 뛰어넘어 쓰나미 그 자체다.

그동안 취재 경험에서 얻은 북핵 대응책은 두 가지로 본다. 달랠 건가 아니면 고사시킬 건가다.

달래는 건 철저한 현실론이다. 2006년 이후 북한이 네 번씩이나 분탕질을 했지만 막지 못한 비용이다. 도발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매번 호언했지만 실은 속수무책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배 째라고 덤비는 망나니를 받아주는 거니 자존심이 몹시 상하지만 공생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려면 평양과 워싱턴이 대타협을 해야 한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핵 포기를 맞바꾸는 방식이다. 이란이나 쿠바처럼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고사시킬 거라면 2005년 취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 제재식으로 북한과 김정은의 달러금고를 옥죄어야 한다. 중국을 움직이도록 해 북한에 지원되는 석유 공급도 막아야 한다.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이 저항할 수 있으니 국지적 충돌에 이은 전면전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유엔도 내부 보고서에서 실토했듯이 지난 10년간 북핵 정책은 실패한 게 맞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과시하기 전에 미리 달래서 끌어낼 건지 날뛰지 못하게 옥죄어서 고사시킬 건지 입장을 진작 정리했어야 한다. 둘 중 어느 카드를 택할지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대책이었는지도 솔직했어야 한다. 외교라는 게 한 깃발만 꽂고 돌진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뒤섞어야 하지만 북핵 문제엔 도무지 안 통했으니 하는 말이다. 3년쯤 후 북한이 똑같은 도발을 반복하기 전에 이번엔 한쪽 카드를 냉정하게 선택해야 한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