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봄 야생화 (2016.3.23.)

joon mania 2016. 3. 22. 18:26

[필동정담] 봄 야생화 (2016.3.23.)


겨울을 밀어내는 봄바람을 꽃들은 먼저 느낀다. 유채꽃과 산수유는 이미 시작됐다. 진달래, 벚꽃, 개나리, 철쭉을 거치면 목련의 향연이 이어질 거다.

주변에서 보기 어려워 그렇지 야생화는 이들보다 더 빨리 봄을 품는다. 복수초는 야생화 중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한쪽에서 꽃을 피운다. 눈더미 사이로 올라온 노란 꽃은 해빙의 상징이다. 봄맞이라는 뜻인 영춘화도 있다. 개나리보다 꽃잎 수도 많고 먼저 피는데 비슷하게 생겼다. 이미 꽃망울 터뜨린 영춘화는 한강변이나 동네 양지바른 돌담에 많다. 나무에 피는 꽃 중에는 생강꽃이 가장 먼저다. 산수유처럼 생겼는데 가지가 삐져나와 꽃을 피우는 산수유와 달리 꽃이 나무에 그냥 붙어 있다. 생강향이 물씬 나 꽃을 따 말리면 생강차처럼 마실 수 있다.

지난 주말 강원도 강촌 가정리 굴봉산역과 가평역 사이 어느 산자락에서 노루귀를 실컷 구경했다. 파란색 꽃잎 가운데에 하얀색 꽃술이 함께 있다. 햇볕 덜 드는 응달 습한 곳에서 자라 환상적인 푸른 꽃색을 갖는다고 한다.

봄 야생화는 낮게 피고 금세 사라진다. 예쁜 꽃에 가시가 돋혀 있기도 하다. 바람에 쓸리지 않으면서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자연의 본능이다.

봄 야생화 중엔 바람꽃과 제비꽃이 단연 가장 많은 종류를 자랑한다. 너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변산바람꽃 등 나열하자면 한참 걸린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피는 제비꽃 종류도 바람꽃에 뒤지지 않는다. 야생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수많은 제비꽃 종류를 구분하는 단계면 도사나 전문가로 인정한다니 짐작할 만하다. 야생화에 푹 빠져 있는 아내는 꽃잎에 무늬가 있는 물매화를 봄 야생화 중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다. 쌀알보다 작아 앙증맞기까지 한 광대나물이라는 야생화도 있다. 괴불주머니, 얼레지, 깽깽이꽃 같은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야생화는 정감 넘친다.

파란색 예쁜 모습인데 개불알꽃이라는 험한 이름이 붙은 야생화도 있다. 봄을 알리는 까치를 연상시킨다고 봄까치꽃으로도 불린다. 이 제목으로 쓴 이해인 수녀의 아름다운 시가 유명하다. 열매가 개 음낭처럼 생겼다고 개불알꽃이라 불렀다는데, 문화학자 이윤옥의 책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붙인 저속한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 지금까지 이어졌다니 씁쓸하다.

봄 야생화에 취해 들떴던 기분이 일본식 꽃이름 잔재를 확인하고 푹 꺼져버렸다. 일부러 비하하거나 왜곡하려고 붙인 이름이라면 빨리 바로잡아야겠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