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부정청탁에 대하여 (2016.8.4.)
joon mania
2016. 8. 4. 14:58
[매경포럼] 부정청탁에 대하여 (2016.8.4.) 김영란법 약칭 부정청탁방지법서 보듯 | |
|
김영란법의 본래 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등에 관한 법률이다. 주관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약칭을 부정청탁금지법으로 정했다. 초안은 부정청탁 금지와 이해충돌 방지를 두 축으로 검토됐다. 국회 심의에서 이해충돌 방지를 통째로 뺐다. 확정된 법은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금지로 대체됐다. 언론 매체들은 3만원·5만원·10만원으로 수치화된 식사, 선물, 경조사비 상한액 때문에 금품수수를 둘러싼 처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약칭에서 보듯 법의 절반을 차지하는 부정청탁 조항에 더 주목해야 한다. 금품이나 향응, 접대는 받는 쪽에서 거절하면 얼마든지 멀리할 수 있다. 반면 부정청탁은 평소대로 일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휘말릴 여지가 다분하다. 법의 직접 대상인 공직자, 언론인, 사립교원 외에 멀쩡한 일반인까지 포함해서다. 돈이 오가지 않고 민원 해결에 실패했어도 부정한 청탁을 한 것만으로 제재를 받는다. 부정청탁금지법 제5조엔 하지 말아야 할 부정청탁을 14가지로 나열했다. 몇 개만 나열하면 이렇다. △인가·허가·면허 등 처리 △채용·승진 등 인사 개입과 영향력 행사 △수상·포상 등의 선정과 탈락 △학교의 입학·성적 등 처리 조작 △병역 관련 직무 △수사·재판·심판·결정·조정·중재 등에 개입하는 행위다. 위반하면 부정청탁을 한 이해당사자는 1000만원, 제3자를 위해 부정청탁을 한 공직자는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부정청탁을 받고 해결하는 데 나선 공직자는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주목할 점은 부정청탁을 한 일반인에게도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그런데 7가지 경우는 처벌 예외 대상으로 빼놓았다. 청원법이나 국회법에 따른 민원 혹은 개선 건의나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의 공익적 목적 제3자의 고충민원이나 제도개선 요구 등이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바로 그 항목이다. 논란을 부를 조항은 하나 더 있다. 처벌 예외에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를 넣었는데 그야말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해석하자면 공공기관으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피해를 구제해 달라고 청원하거나, 공공기관 계약 입찰에 응했는데 경쟁업체보다 낫다는 점을 공개적인 서류 제출 등으로 항변하는 행위 같은 건 정당한 청탁에 해당될 수 있다. 국민권익위의 해설서에 담긴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섬유 관련 사업을 하는 A가 경쟁업체에서 신소재 섬유 특허출원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변리사 B에게 관련 정보를 얻어줄 것을 부탁했다. B는 담당 부처 사무관 C에게 해당 정보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 경우 A와 B는 부정청탁 행위로 간주돼 처벌을 받는다. 반면 의류 수입업체에서 일하는 D가 촉박한 납품기일을 맞추려고 고향 선배인 세관직원 E에게 수입 의류를 신속히 통관시켜 달라고 부탁한 경우는 부정청탁이 아니다. 친구가 국공립 병원에서 어머니의 수술 순서를 앞당겨 달라고 부탁해 이를 아는 병원 관계자에게 요청한 F도 부정청탁으로 처벌 대상이다. 김영란법과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인데 회사 업무나 개인 친분 때문에 한 일로 A, B, F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부정청탁에 관한 한 일반인도 이렇게 얼마든지 적용된다. 이 정도면 과잉입법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과 사회상규라는 개념의 모호성에 대해 9인 재판관 모두 문제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나와 상관없다며 손놓고 있다가 김영란법으로 느닷없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14가지 부정행위와 7가지 정당행위를 달달 외워둔다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안마다 국민권익위에 문의하거나 변호사에게 자문을 해야 하나. 걱정스럽다. [윤경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