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두 가지 일을 보며 이 참에 로비스트를 양성화하자는 생각을 다시 했다. 하나는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고액 변론이다. 그에 연결돼 덩굴처럼 드러난 검찰의 전관예우 먹이사슬은 추악했다. 그 불똥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게까지 튀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이달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다.
우리에겐 로비스트와 브로커의 경계가 모호하다. 과거 몇몇 게이트에 등장했던 브로커들이 로비스트를 자칭했지만 어두운 이미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정치인과 관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돈을 건넸고 이런 거래는 밀실에서 벌어졌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활동하는 대외업무 담당자는 수백 명을 헤아린다. 기업은 내놓고 이들에게 임원 완장을 달아주고 마음껏 판공비를 쓰게 한다. 퇴직 후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고용된 고위공무원 출신들도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국회와 정부 쪽 접촉 창구 구실을 한다. 사실상의 로비스트들이다. 국내에서 로비스트법 필요성이 처음 나온 건 1993년 국회 제도개선위원회에서였다. 이후 린다 김 스캔들이 터지자 참여연대가 로비활동공개법 제정을 제안했지만 무위였다. 2004년 정몽준 의원이 외국대리인 로비 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처음 발의했다. 2005년에는 이승희 의원이, 2006년엔 이은영 의원이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는데 17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2007년엔 국가청렴위원회가, 박근혜정부에서도 법무부가 로비스트 관련법 필요성 연구 용역을 발주했으나 거기에서 그쳤다.
로비스트법 입법화는 변호사업계의 사활을 건 제동에 번번이 무산됐다. 로비스트가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반발이면서 관피아를 더 고착시키고 검은 거래를 되레 부추길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법사위를 장악한 율사 출신 의원들이 철옹성처럼 막았다. 변호사법에 변호사 외에는 청탁과 자문 등 법률적 조력을 통한 활동을 하면 위법으로 규정해놓고 자기들만의 시장을 향유했다.
이젠 변호사들의 수성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법률시장 개방으로 외국법자문사 제도까지 도입됐다. 다른 나라에서 변호사 자격을 따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뛸 수 있다. 국내 변호사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본들 그들만의 리그가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에서는 제3자를 로비스트로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나서는 게 당연한 권리다. 로비스트법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호 견제토록 하는 장치다.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이익단체도 양성화된 로비스트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런 미국도 1791년 수정헌법 1조 청원권에 근거해 로비스트 활동을 시민의 합법적 권리로 부여해놓고도 1946년에야 로비규제법을 제정했고 한층 포괄적인 로비공개법으로 자리 잡은 건 1995년이었다.
로비공개법에선 로비스트를 업무시간의 20% 이상을 의원과 보좌진, 정부 관리와 접촉하는 데 보내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정책입안자나 결정자와의 직접적인 접촉뿐 아니라 정책에 영향을 주는 준비작업을 로비로 간주한다. 로비스트나 로비회사는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는지, 고용 기간, 수임료, 경비로 인정되는 비용 등을 신고하고 6개월마다 지출 내역과 용도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위반 땐 가혹한 제재를 부과한다.
우리도 법에 로비스트 활동과 범위 그리고 윤리 규정을 명확히 정하면 된다. 투명성과 공개가 원칙이다. 이를 뛰어넘는 검은 거래는 수뢰나 배임수재 등 다른 법의 잣대로 막으면 된다.
20대 국회의원들도 로비스트법 마련에 적극 나설 것 같지는 않다. 김영란법 부정청탁 금지 규정에서 자신들의 활동은 처벌 대상에서 예외로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청탁 활동은 물론 자신들에 대한 이익단체의 민원 전달을 용인했으니 아쉬울 게 없을 게다.
하지만 이젠 로비와 로비스트를 햇볕 아래 공공연한 장소로 끌어낼 때가 됐다. 우리도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기 위한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창구를 만들어보자.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