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포럼]또 엽관제를 말한다(2016.10.6.)
[ 매경포럼]또 엽관제를 말한다(2016.10.6.)
대선캠프 인사 자리 챙겨주기
정권 후반에도 요란스럽다
승자의 전리품 챙기는 식이라면
일정 자리 까지는 엽관제 선포하고
대통령 임기 끝나는날 맞춰
다 함께 물러나는게 어떤가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이사회에서 선임 확정됐다.기사는 1단으로 보도됐다.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내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에 묻혀 세간의 관심 밖으로 밀렸다.그보다 앞서 수자원공사 사장 내정설이 돌았던 이노근 전 국회의원은 그 자리에 가지 못하고 내부 출신으로 대체됐다.짐작컨데 지난 대선에서 이 전 의원은 정 이사장만큼 기여를 하지 않았던 차이였을듯 싶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IBK기업은행장에 내정된듯 하다.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언급했는데 행장추천위는 다른 들러리를 내세워 공모한뒤 현 전 수석을 단수로 올리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들린다.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KB은행 상임감사행 불발후 이젠 IPTV방송협회장에 내정돼 이달 중 취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SK텔레콤, KT 등 IPTV 사업자들로 구성된 이익단체인데 보은 인사 자리로 쓰여왔다.
자리를 줘야하는 정찬우,현기환,신동철의 공통점은 대선 캠프에서 뛰었고 공을 세웠다는 대목일게다.정치권에선 대선때 캠프에 참여해 공을 세운 이들을 챙기려면 5년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그만큼 많아서다.
공공기관 경영공시 사이트 알리오에 떠있는 302개 공공기관 임원 중 전임 정부때 선임됐는데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후에도 자리를 지킨 이가 20%를 웃돌았다.이명박 정부는 출범직후 임기를 남긴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들을 모조리 밀어냈지만 박근혜 정부는 임기까지 둔 때문이었다.박근혜 대통령 만드는데 공을 세운 이들에게 초반에 보상할 자리를 못줬으니 정권말까지 챙겨야 할 공신이 줄지어 남아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초기 논공행상 중 압권은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선임된 재미 방송인 자니 윤씨였다.윤씨는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본부장을 지낸 덕에 보상을 받았지만 임기만료 한달을 남기고 뇌출혈로 사퇴하는 불운을 맞았다.칠순을 넘긴 고령에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던 그에게 이런 자리로 보상을 했어야하는지 답답하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공직을 독차지 하는 엽관제를 미국 정치권이 도입한건 1828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때였다.당시 상원의원 윌리엄 마시는 `전리품은 승자의 몫'이라며 옹호 논리를 폈다.하지만 1881년 취임한지 4개월도 안된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총에 맞아 암살 당하는 참사후 엽관제는 더 이상 존속될수 없었다.선거 캠페인때 도우면 자리를 준다 해놓고 당선 뒤 나몰라했다며 대통령에게 총질을 했으니 아연실색할 수 밖에.관료들만의 공직 독점을 견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엽관제가 선출직 권력의 공개적인 공직 나눠먹기로 전락했으니 독직과 부패로 이어진건 자연스러웠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혹자는 3000여개,다른 이는 1만개까지라고 얘기한다.장차관과 고위공무원 그리고 각 헌법기관 수장 인선은 당연하고 여기에 공공기관 임원급만 따지면 2500여개인데 이 중 당연직을 빼면 1860개 정도다.정권을 쥐면 철학과 생각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려면 마음이 통하는 인사들로 이런 자리를 채워야 하는건 맞다.하지만 대선 캠프에 참여해 공을 세웠다고 무조건 밥그릇 챙겨주는 식의 자리 배분은 역겹다.그럴바엔 아예 공직자 관련법을 바꿔 어느자리 까지는 정무직으로 앉히겠다고 선언해버리는게 어떤가.선을 그어놓고 그 자리에는 대선 공신이나 대통령 주변 인사들로 채우면 된다.한국판 엽관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다.겉으로는 탕평책이나 자격임용제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대선 공신 자리 챙겨주기를 한다면 젊은이들에게 거짓말만 가르치는 것이니 더이상 이중구조를 용인해선 안된다.
엽관제를 선포하더라도 원칙 하나는 꼭 지켜야한다.임기를 남겼어도 대통령 그만 두는날 함께 떠나는 것이다.정치적으로 임명됐으니 인사권자와 함께 그만둬야 뒤끝도 없고 논란도 줄어든다.
예전에 쓴 컬럼에서 노무현 정부때(2005년 11월 18일자)와 이명박 정부때(2010년 7월2일자)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 했다.차라리 엽관제를 선포하라고 질타했다.임기를 17개월 남긴 박근혜 정부에게도 다시 반복한다.2018년 새로 들어설 정권에도 같은 얘기를 되풀이 할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