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셔틀 정상외교(2018.5.29)

joon mania 2018. 5. 29. 08:42

[필동정담] 셔틀 정상외교(2018.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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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청와대를 출입하던 시절 정상 간 셔틀 외교라는 걸 처음 따라가 취재했다. 셔틀은 왕복운행을 의미한다.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양국 관계자가 오가며 벌이는 외교를 말한다. 정상들이 주역이었으니 셔틀 정상외교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시에서 만났다. 아침에 날아가 오찬을 하며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한 뒤 저녁 늦게 돌아왔다. 정상의 해외 방문이라고 말하기 힘든 하루짜리 일정이었다. 그해 7월 고이즈미 총리가 제주로 날아와 노타이 차림으로 만났던 데 대한 답방이었다. 2005년 6월엔 미국 워싱턴DC에도 그런 식으로 날아갔다. 가고 오는 데 각각 14시간씩 걸렸는데 현지에서 하룻밤 자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는 바로 돌아왔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그런 식의 답방을 하지 않았다. 

 셔틀 외교라는 용어는 1973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제4차 중동전쟁 발발 직후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양측을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한 뒤로 생겼다. 제3자였던 키신저의 역할을 말했는데 이후엔 양쪽 당사자들이 직접 오가며 현안을 협의하는 방식을 일컬었다.

셔틀은 두 지역을 왕복하는 비행기나 기차, 버스다. 최초의 셔틀 노선은 1910년 6월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을 오가는 비행기였다. 1919년 8월에는 런던~파리 셔틀 항공이 생겼다. 유럽과 미국 간에는 런던에서 보스턴 간 셔틀이 가장 유명했다. 신대륙을 찾아간 이들이 정착해 이른바 뉴잉글랜드라는 별칭을 얻은 동부 보스턴과 영국 출신 이민자들의 고향인 런던을 잇는 비행기는 예매할 필요도 없이 공항에 나가 줄을 서 순서대로 탈 수 있었다.

지난 26일 오후 판문점 통일각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도 전형적인 셔틀 외교다. 이번엔 양쪽 모두 비행기 대신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전에 의제나 의전 형식 등을 세부적으로 조율하지도 않았다. 양쪽 대리인인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간의 사전 통화만 있었다.



셔틀 정상외교는 격식을 버린 실용적 접근인 만큼 현안 논의와 해법 마련에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계속 이어진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또 셔틀 외교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의 표현처럼 필요하면 언제든 친구 간 일상처럼 만날지 모른다. 남북 관계의 변화 속도가 참 놀랍고도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