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호모 오노마스티쿠스(2018.10.17)

joon mania 2018. 10. 17. 08:48

[필동정담] 호모 오노마스티쿠스(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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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마스틱스(onomastics)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 명명학 또는 고유명사연구학이다. 그리스어로 이름이라는 뜻의 `오노마`에 학문 분야를 의미하는 `스틱스`가 합쳐진 단어다.

오노마스틱스는 사람이나 장소 이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건물, 천체 이름 등 존재하는 모든 고유명사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우리도 오랜 역사를 가진 성명학(姓名學)이 있는데 사람 이름에만 천착했으니 방향을 조금 달리한 셈이다. 주변에 있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관계를 설정하고 규명한다. 지배와 소유의 관계일 수 있고 단지 정서적 유대나 교감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웃·친구·연인끼리는 특정 이름을 공유하며 친밀감과 동질감을 키운다. 지리학자인 주성재 경희대 교수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가리켜 호모 오노마스티쿠스라고 명명했다. 이름 짓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성경을 보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이름 짓는 일은 중요한 임무였다. 창세기 2장에 있는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라는 대목이다. 아담의 후손이 정착한 곳에는 예외 없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름이 붙여졌다.

장소 이름은 우연히 또는 아무 연유 없이 정해진 건 없다는 게 지명 연구의 철칙이다. 해당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맞물려 있다. 특정 지역에 살면서 혹은 공부나 일, 여행 때문에 이동하면서 그 장소의 이치를 알아가는 것은 지리학자를 넘어 누구에게나 공통이다. 주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을 지리적 존재 즉 호모 게오그라피쿠스(homo geographicus)라고 규정한 지리학자 R D 색 박사의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된다. 남쪽에 있는 산은 남산, 북쪽에 있는 마을은 북촌 이런 식이다. 주 교수가 펴낸 `인간 장소 지명`이라는 책을 보면 어려운 지리학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학문인지 무릎을 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름을 붙이는 일을 영어 표현으로 네이밍이라고 개념화해 이제 일상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사람이든 장소든 뜻있고 부르기 쉽게 이름을 잘 짓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