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더 단단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자(2017.3.11.)

joon mania 2018. 12. 14. 15:46

[사설] 더 단단해지는 대한민국을 만들자(2017.3.11.)

      

촛불을 들었든 태극기를 들었든 모두가 다 헌법 아래 있었다. 정의를 외쳤든, 애국을 주장했든 모두가 다 법치 아래 있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긴장 속에서 TV를 지켜보는 국민 앞에서 그렇게 엄중하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시작된 탄핵심판은 92일 만에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정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재판관 8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결론을 모았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했다. 현직 대통령을 임기 만료 전 자리에서 쫓아내는 역사의 한쪽을 쓸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은 불행했다. 그러나 그건 딱 어제까지여야 한다. 오늘부턴 새로운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대통령도 국회도 모두 헌법 아래에 있다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해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남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숨겼고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며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국민에게 약속한 진상 규명이나 특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등 일련의 반복된 언행에서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인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헌법은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위를 보호하기 위한 최상의 법이다. 헌재는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고 대한민국의 법치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혔다. 탄핵 대상이었던 대통령도, 소추를 제기한 국회도 모두 헌법 아래에 있다.


세월호는 탄핵 사유 안 된다는 헌재의 판단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도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은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좌천 인사,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해당 언론사 사장 해임에 박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는 탄핵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에 대통령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적시했다.
본란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한때 세월호 7시간 행적은 굿판, 성형시술, 주사 등의 의혹과 섞이면서 마치 국정농단의 본류인 것처럼 다뤄졌다. 세월호 사고 보도를 들은 후 취했던 대통령의 부족한 판단이나 대응을 비판하기보다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추고 과도하게 공격했던 일종의 젠더 폭력이었다. 대통령 자리에서 떠난 자연인 박근혜에게도 계속 따라다닐 수 있는 불명예를 벗겨줘야 한다. 

 
정치권은 찢어진 국론 하나로 묶어내야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대치해온 광장에서는 섬뜩한 선동적인 표현들이 쏟아져 양측 간 감정의 골은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깊어져 있다. 어제 헌재의 선고 후 탄핵 반대를 외쳤던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헌재 주변으로 몰려가다 이를 막는 경찰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후 승복을 선언했던 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 지도자들도 국민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기 바란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혼란은 물론 외교안보와 경제 각 분야마다 빨간불이 켜졌다. 북한은 잇단 미사일 발사 등 노골적인 도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저마다 '스트롱맨 리더십' 경쟁을 벌이듯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골몰하며 자국 이기주의 외교에 열을 올린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과 보복은 국가 간 관계에 기본조차 외면하는 단계로까지 확산됐다. 사드 포대 용지를 제공했다며 민간기업 롯데에 벌이는 불매운동과 행정규제는 물론 한국행 관광상품 판매 금지에까지 도달했다. 지난해 말 한일 통화스왑 만기 연장을 둘러싸고 일본이 협상 상대 부재 운운하며 보였던 행태는 모욕에 가까웠다.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리더십 부재가 국가에 대한 조롱과 무시로 이어졌으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젠 일상으로 … 광장의 자제를 주문한다
이제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 내려진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모두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법치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떠받치는 약속이자 합의다. 헌재의 선고에 대해 법적 권위를 무시하고 불복을 획책하는 언행은 법치주의에 도전하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짓이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으니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정상적인 절차보다 7개월 앞당겨 치르는 대선이다.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승리를 위한 세력 싸움에 정쟁과 이합집산을 거듭하겠지만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통합과 포용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결을 벌여야 한다. 표심 잡기를 위한 포퓰리즘이나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공학에 빠진다면 대한민국은 '실패한 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가 제시했듯이 비포용적이고 배타적인 제도와 태도를 고집하는 한 성공할 수 없다.
촛불과 태극기를 내려놓고 상대를 포용하고 품어주자. 증오와 분열을 떨쳐내고 치유와 통합에 나서자. 이제 광장과 거리에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제 일에 전념해야 할 때가 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아픔을 성장통으로 이겨내고 더 단단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 후세에 물려주도록 하자. 대한민국의 저력을 오늘부터 세계 만방에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