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文·洪 유죄 판결이 가져올 공직사회 결정장애를 걱정한다(2017.6.10.)

joon mania 2018. 12. 17. 14:50

[사설] 文·洪 유죄 판결이 가져올 공직사회 결정장애를 걱정한다(2017.6.10.)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나란히 내려진 법원의 실형 선고는 앞으로 공직사회에 여러 측면에서 파장을 낳을 것 같다. 두 사람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놓고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문 전 장관에게는 복지부 공무원을 통해 기금운용본부에 찬성토록 압박한 점이 직권 남용으로, 홍 전 본부장에게는 의결권을 행사할 투자위원들에게 찬성을 권유하고 합병 시너지 효과를 조작해 국민연금 기금에 손실을 끼친 점이 업무상 배임으로 각각 적용됐다. 재판부는 외압에 따른 합병으로 주주가치 훼손과 삼성 측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낳았다고 봤지만 청와대의 지시나 삼성의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결문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기소돼 별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으니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국민의 노후를 보장할 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은 투자와 운용에서 더욱 주춤거리며 주요 결정을 내리지 않고 꺼릴 개연성이 높아졌다. 주식을 보유 중인 기업의 비슷한 합병 건이나 중대한 안건에 국민연금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합리적인 판단마저 위축될 수 있어서다.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강화할 방안 마련에 고삐를 더 조이라는 요구가 커질 게 뻔하니 정치권 등 외부 압력을 배제할 장치를 어떻게 강구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 대한 이번 판결이 공직사회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놓고 공무원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계적인 법 적용의 후유증이다.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을 둘러싼 정책 결정에는 법적 측면 외에 현실적 여건이나 정무적 판단도 함께 감안돼야 하는데 사후에 무차별적으로 책임을 씌우다 보면 정작 필요한 시점에 손을 놓고 뒤로 빠져버리는 사태가 빈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후 외환은행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는 작업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기소돼 곤욕을 치른 뒤 무죄 판결을 받은 변양호 전 재무부 국제금융국장의 전례로 생겼던 변양호 신드롬의 2탄, 3탄이 앞으로 공직사회에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적 이득을 취하려거나 특정 세력을 위해서가 아니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내리는 정책 결정을 주저하고 눈치 보게 만들면 정상적인 행정행위를 끌어내기 어려워진다. 공직사회에 정책 결정장애가 확산되면 수요자인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