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이판사판(理判事判) (2019.5.17.)
[필동정담]이판사판(理判事判) (2019.5.17.)
불교 성직자인 승려를 분류할 때 학승과 선승으로 구분한다.경전을 많이 공부한 스님은 학승이라면 선방에서 수행을 많이 한 스님은 선승이라고 나눈다.불자들은 학승과 선승을 놓고 누가 낫다는 식의 선호를 보인다.굳이 따지자면 머리로 이해하는 공부가 먼저이고 몸으로 닦는 수행은 다음이니 선후를 논할 수는 있지만 우열을 말하기는 어렵다.
이판과 사판으로 나누기도 한다.이판(理判)은 산중에 은거하며 경론을 공부하고 참선 수행하며 이치를 탐구하는 스님이다.사판(事判)은 마을에 시주 얻으러 다니고 농사를 지어 절 살림을 맡는 스님을 말한다.불교 국가였던 고려때엔 승려 위상이 막강했지만 억불 정책을 썼던 조선때엔 사찰 명맥 유지와 생존을 걱정할 지경까지 몰렸다.일부 승려들은 종이와 기름을 만드는 잡역에 종사하며 사찰의 존속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사판승이 많아질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조선 왕조는 승려를 도성에서 쫓아내고 멀리 산중에나 머물도록했다.출가는 인생의 막다른 상황에서 하는 선택으로 비쳐졌다.궁지에 몰린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쓰는 이판사판이라는 표현은 이런 사연이 담긴 말이다.불교에서는 어떤 사안을 논의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때 대중의 참여하에 공개회의를 하는데 이를 공사(供辭)라고 부른다.이판과 사판이 함께 하는 회의가 이판사판 공사인데 이를 응용해 일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상황을 놓고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비하성 표현까지 만들어졌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12일 열린 불교 행사에 참석했다가 되레 구설수에 올라있다.경북 영천 은해사 봉축 법요식이었는데 불교 의식의 기본인 합장을 하지도 않고 내내 두손을 배에 모은채 서있었다는 것이다.법회 시작 기도인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때 목탁소리에 맞춰 고개를 60도 정도 숙이는 반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아기부처를 씻기는 관불의식땐 이름이 호명됐는데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고도 한다.황대표의 행동은 자신의 종교에서 비롯된 소신 때문일게다.몸따로 마음따로 였던 그의 태도가 행여 이판사판 공사판 처럼 불교에 대한 무시가 잠재적으로 깔려있는듯 비쳐지면 더 큰 후폭풍을 맞을수 있다.여하튼 해당 종교에 대한 예법 정도는 지켰어야 하는게 포용이고 인지상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