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의인화된 식물 이름(2019.7.26.)

joon mania 2019. 7. 26. 09:32

[필동정담] 의인화된 식물 이름(2019.7.26.) 


사위와 며느리는 아무래도 제 식구 대접을 하기 어려웠다. 딸 아들과는 달랐다. 풀꽃 이름에도 그런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딸을 위해서지만 사위 사랑은 극진했다.
오죽하면 씨암탉을 잡았을까. 처가에 왔다가 딸과 다시 보낼 때 바리바리 싸주고 싶은데 사위 힘들까봐 적당량만 짊어지도록 연약한 덩굴로 지게 질빵을 만들었다. 이렇게 줄기가 연하고 잘 끊어지는 미나리아재빗과 나무줄기를 사위질빵이라 불렀다. 아들과 살 붙이고 살아도 며느리에겐 가혹했다. 덩굴성 한해살이풀엔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밑씻개라는 험한 이름을 붙였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잎자루가 잎몸 밑면에 붙어 있는 건 며느리배꼽, 삼각형 잎몸 밑변에 붙어 있는 건 며느리밑씻개다. 며느리밑씻개엔 풀잎 뒷면에 따가운 가시가 있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식 이름은 사광이아재비로 일본에서 만든 꽃이름 의붓자식밑씻개를 본떠 붙였다는 쪽이 더 유력하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나무에 스님들을 빗댄 이름이 많다. 활엽수인 참죽나무는 어린 순으로 나물이나 전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유용했다. 진짜 중처럼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참중나무로 부르다 참죽나무로 바뀌었다. 비슷한 수종이지만 독이 있는 데다 냄새가 심해 식용이 불가능한 가죽나무도 있다. 참죽나무에 대칭해 가죽나무로 불렀다. 가짜 중이라는 의미로 가중나무, 한자어로 가승목(假僧木)이다. 그늘을 가려주는 가로수로는 유용하나 매미들이 번식하는 거점으로 삼아 농부들은 싫어했다.

열매에 기름 성분이 풍부해 동백기름 대용으로 썼던 때죽나무는 때중나무로 불리다 바뀌었다. 가을에 매달린 열매들 머리가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스님들이 떼로 몰려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붙인 이름이다. 열매 찧은 물을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어 생겼다거나, 열매와 가피를 물에 불려 그 물로 빨래를 해 때를 쭉 빼는 용도로 쓰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풀과 꽃 이름을 의인화한 조상들의 해학을 보면 참 재치가 넘친다. 주말에 아내와 가는 풀꽃이름 공부모임에서 많이 배웠다. 사연을 알고 난 뒤 풀꽃 생김과 이름을 떠올리면 의미가 달라 보인다. 산과 들을 걸을 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