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백과전서의 역설(2020.3.25.)

joon mania 2020. 3. 28. 08:45

[필동정담]백과전서의 역설(2020.3.25.)


 백과사전을 백과전서(Encyclopedie)라고도 부른다. 영국에서 처음 시도했는데 프랑스에서 제대로 완성됐다. 프랑스판 정식 이름은 `문인협회에 의한 과학,기술,공예에 관한 합리적 사전`이다. 본문 17권과 판화로 이뤄진 도판 11권 등 28권으로 구성된다. 총 7만1818개 항목에 대한 서술을 담고 있다. 1751년 제1권이 나왔고 1772년 도판을 담은 마지막 권이 출판됐다. 21년간의 작업이었다.당대 최고 지식인 150여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장 자크 루소가 음악에 관한 글을 썼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도 동참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참여에 왕정과 귀족들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1권이 나오자 1752년 즉각 금서로 지정했다. 온갖 탄압을 뚫고 완성된 뒤 백과전서는 결국 1789년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서 구실을 했다. 지식 보급을 넘어 대중의 인식 지평을 넓혔기 때문이다. 백과전서의 역설이다. 신과 종교, 왕의 절대권력으로부터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이성으로 관심을 옮겨가게 한 것이다.

편집장 드니 디드로는 백과전서 첫 번째 항목에 `신'을 배치하지 않았다. 알파벳 순서에 따라 대기(atmosphere)를 맨 앞에 올렸다. 종교의 권위와 기존 질서를 외면하고 사용자들이 찾아보기 쉽게 배려한 편집이었다. encyclopedie라는 단어 자체가 원(cyclo) 안에(en) 보편적 교양(paedeia)을 담는다는 뜻이었다. 개혁적 계몽주의자들의 의도가 확연하게 읽힌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국민 누구나 전문가가 된 듯 하다. 백과전서를 통달한 것인지 신문과 방송 덕분인지 모를 일이다. 전염병 방역이나 예방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이들이 넘친다. 마스크 사용에선 방역 전문가였다가 국경 봉쇄 필요성엔 외교 전문가로 변신한다. 재난수당 지급엔 경제와 복지 전문가다. 각자 습득한 지식을 자랑하는데 말릴 수야 없다. 하지만 재난과 위기 상황엔 각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맞는다. 대통령에서부터 이웃집 김 선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되는 얘기다. 윤경호 MBN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