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동차를 몰다 속도위반에 걸릴 때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규정 속도보다 20마일을 초과했을 때다. 위반 속도에 비례하는 통상의 벌금보다 두 배를 부과받는다. 더블 파인이라고 한다. 여기에 무서운 낙인이 찍힌다. '레클리스 드라이버(reckless driver)'라는 타이틀이다. 법원에 출두해 약식재판도 받아야 한다. 판사가 속도위반에 낼 벌금과 별도로 추가 벌금량을 판결한다. 이후부터는 다른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아 적발되면 요주의 대상으로 취급받는다. 경찰 정보에 그렇게 뜬다. 경고만 하고 보내줄 위반에도 레클리스 드라이버에게는 꼬치꼬치 묻고 따지며 고생을 시킨다. 미국에서 사는 이들은 레클리스 드라이버에 걸리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한다.
비나 벤카타라만 미국 MIT 교수는 저서 '포사이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레클리스 에이지(reckless age)'라고 규정했다. 뻔한 몰락이 보이거나 조심하라는 경고 신호가 사전에 나타나는데도 경솔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압축했다. 외통수 도로에서 막혀 있는 차량 행렬을 보고도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그 길로 들어서 시간을 허비하는 행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중에 나타날 결과에 대해 그다지 많은 고민과 저울질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바로 눈앞에 나타날 화려한 성과나 주위에서 쏟아질 박수를 의식할 뿐이다.포퓰리즘에 젖어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들만 그런 게 아니다.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들도 비슷하다. 가계나 개인도 그렇다. 식품회사 임원들은 나중에 닥칠 가뭄으로부터 농장을 지키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단기에 누릴 주주 이익 극대화에 집중한다. 지금 부담할 대출금의 원리금 납입 규모가 많지 않다는 데 현혹돼 덜컥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 가장도 비슷하다. 이런 의사결정이 내려질 때엔 좀처럼 브레이크가 걸리기 어렵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래에 영광을 줄 잘한 선택이라고 박수를 받을지 모른다. 자치단체나 중앙정부 같은 공공부문이나 선출직 정치인들의 의사결정에서는 훨씬 비일비재할 수 있다. 곧바로 치를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후, 20년 후 공동체에 미칠 영향 따위를 고려할 여유도 없고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의사결정을 내릴 땐 사전에 나타난 위험과 경고 신호를 얼마나 감지하느냐의 능력이 중요하다. 더 필요한 건 지금 내리는 결정이 가져올 미래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읽어낼 능력을 갖고 있느냐다. 우리는 스스로와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와 관련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벤카타라만 교수는 역설한다. 앞선 세대보다 허약하거나 낮은 판단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크고 많아졌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에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이들은 그에 비례해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기대수명은 빨리 늘고 있다.은퇴 이후 살아야 할 시간이 경제활동 기간보다 더 길다. 치명적인 유행병이나 기후 변화가 인류 전체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그 일부분의 모습만 비춰준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며 산다. 나를 대변할 일꾼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에 줄 서는 것이 싫다며, 쌓인 빨래가 더 중요하다며 투표하지 않는다. 그래 놓고 자기 맘에 들지 않는 국회의원과 정당을 향해 욕만 하고 만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내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는 일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