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컬럼

[세상사는 이야기]이타주의에 대하여(2020.12.19.)

joon mania 2020. 12. 18. 10:46

[세상사는 이야기]이타주의에 대하여(2020.12.19.)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에 
나와 당신을 지켜주듯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내게도 행복이 오는
공동체 만들 수 있을까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가 이타주의를 부르짖은건 오래전부터였다.2000년대 중반 이미 그는 세계화의 해법으로 이타주의를 꺼냈다.2020년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설 방법으로도 이타주의를 내세웠다.마스크 착용이 모두에 이익을 주는 이타주의의 전형이라고 했다.다른 사람들을 보호함으로써 나 자신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마스크 쓰는 인류 즉 `호모 마스크스`라는 새 용어가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요즘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누구나 이해한다.


이타주의를 호소하는 것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자기 몫을 함께 나누고 남에게 베푸는 행동은 어디에서 촉발될까.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번 돈을 인류 공동의 생존을 위한 복지재단에 넣은 빌 게이츠를 모델로 삼을까.선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움켜쥐고 세금 덜 내는 묘안찾기만 골몰하는 대한민국 재벌은 지탄의 대상인가.한쪽은 이타주의의 모범이고 다른 쪽은 이기주의의 화신인가.

 

이타주의를 꺼내면 아프리카 벤투어에서 나왔다는 우분투 정신을 얘기한다.남아프리카 성공회 신부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통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있다.다른 이를 도우며 상대의 생각을 인정할 줄 아는 생활태도다.자기들만의 공동체를 꾸려 오랜 세월 살아온 지혜다.
헤밍웨이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어느 심리학 교수의 가르침도 비슷하다.풍선속에 각자의 이름을 써 천정으로 날린 뒤 자기 이름이 담긴 풍선을 찾는 게임이다.제한된 시간에 서로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교수는 아무 풍선이나 끌어내린 뒤 이름의 주인공에게 건네줘보라고 권한다.밀치는 경쟁은 사라지고 각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교수는 설명했다.자기의 행복을 찾으려 남을 밀치고 아귀다툼 해봐야 소용없다.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행복을 먼저 나눠주면 나에게도 누군가가 행복을 건네준다.그것이 헤밍웨이의 가르침이란다.

 

이기주의는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안다.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고전주의 경제학의 원조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썼다."사람들은 단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할 뿐이다.그런 행동속에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한다.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얻는다."이기주의의 반대편인 이타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나왔다.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서다.하지만 이미 크고 작은 공동체의 전통적인 미덕으로 혹은 여러 종교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이타주의다.의무감이나 충성심을 뛰어넘는다.그 댓가로 이득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현대사회에서는 하나의 운동 혹은 윤리학 사조로서 실천하자는 쪽도 있다.연예인이나 자산가 등 성공한 유명인들의 기부나 자선활동이 대표적이다.남들에게 선행을 공개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다소 계산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존중될 일이다.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숭고한 이들의 이타적 유전자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조심스럽다.이타적으로 행동하는건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주변에 알리는 본능적 선택이라는 재미있는 생물학적 해석도 있다.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한 접근이다.

 

제몫 찾기에만 혈안인 듯 보이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타주의를 부르짖어본들 당신이나 고고하게 살라는 비아냥만 들을지도 모르겠다.공리주의에 덮이거나 사회주의를 택하지 않는 한 이미 존재하는 격차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불평등과 양극화는 개인의 노력을 넘어 사회 차원에서 풀어 나가야할 과제다.한 해를 마무리하는 즈음이다.작은 실천으로서 이타주의에 동참해보자.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생활강령으로서 그리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