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컬럼

[세상사는 이야기] 조정으로 풉시다 (2021.4.17.)

joon mania 2021. 4. 13. 10:35

[세상사는 이야기] 조정으로 풉시다 (2021.4.17.)

 

개인이나 기업들 다툴 때
소송부터 제기하지 말고
조정이나 중재 같은
민간 주도 해결 방식을
먼저 활용해 보시길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53개 나라가 서명한 국제 협약이 있다.명칭은 싱가포르조정협약이다.정확하게는 `조정에 의한 국제 화해 합의에 관한 UN협약`이다.조정을 거쳐 얻어진 결과에 대해 재판 판결이나 중재 판정과 마찬가지로 집행력을 부여하자는 내용이다.개인간엔 물론이고 기업 간, 국가 간 상거래 분쟁을 조정이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하자는 취지다.
우리나라도 2019년 8월 서명했다.국회 비준도 얻어 2020년 9월 12일 부터 발효됐다.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고 동참하기로 약속한 것이다.지난달 10일 법무부 주도로 싱가포르조정협약 이행 법률 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가 발족됐다.새로 만들 법률안 마련 작업과 함께 관련법을 둘러싸고 생길 수 있는 쟁점을 미리 검토하고 대책도 논의한다.
양방 간 분쟁 해결 방법을 물으면 여러분은 무엇부터 떠올리시는지.많은 이들은 소송부터 얘기한다.싸우면 `법 대로 하자` `법에 물어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기업 간에도  재판까지 가야 종료된다.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국제사법재판소가 그래서 존재한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에 의존하는 소송과 다른 방향의 분쟁 해결 방식이 얼마든지 있다.`재판 외 분쟁 해결` 또는 `대안적 분쟁 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라고 부른다.화해,조정,중재 등이다.분쟁 당사자들간에 직접 협상을 벌여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화해(conciliation)는 쌍방 간에 양보하고 다툼을 그만 둘 것을 약정하는 것이다.조정(Mediation)과 중재(Arbitration)는 양쪽 사이에 매개 역할을 하는 제3자가 필요하다.조정인 혹은 중재인이다.조정과 중재 간에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중재는 중재인의 결정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다.분쟁 당사자들도 결정엔 복종해야한다.양자의 합의로 위임된 중재인이 판사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중재를 임의 재판 또는 사적 재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반면 조정은 쌍방 간의 합의와 수용에서 출발한다.합의했어도 여건이 바뀌면 조정 결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조정인의 역할도 양측 협상을 도와주는데 그친다.모두 자율성을 토대로 한다.비용도 중재에 비해 적게 든다.소송 비용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이다.
조정은 법원이나 행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분쟁 해결 방식이 아니다.민간에 의해 이뤄지는 대안 찾기다.그런 점에서 분쟁 당사자들이 조정이라는 방식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기업들도 상거래 분쟁을 조정이라는 방식으로 풀겠다는 생각부터 가져야 활성화된다.국내에서든 국제 무대에서든 마찬가지다.다툼이 벌어지면 먼저 조정으로 푸는 과정을 거쳐보고 안될 경우 중재로 넘어가면 된다.조정과 중재 모두 실패하면 마지막 단계에 소송으로 가도 늦지 않는다.수천억원 소송비를 쓴 뒤 벼랑끝 합의를 끌어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의 배터리 분쟁도 초기 단계에 제대로 된 형태의 조정이라는 해법을 거쳤으면 어떠했을지 아쉽다.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한국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작용했지만 양측간 합의를 끌어낸 과정은 일종의 조정이었다.
싱가포르조정협약 시대를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의 조정 활성화를 촉진하려는 단체가 출범했다.사단법인 국제조정센터(KIMC)다.박노형 고려대 로스쿨 교수가 이사장을 맡았고 권오곤 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김용섭 한국조정학회 회장 등이 자문역으로 뒤를 받친다.주요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들도 함께 한다.싱가포르,홍콩,도쿄 등에는 비슷한 단체가 일찌감치 만들어져 활동을 펼치고 있다.모두 민간 주도 단체들이다.우리 주변의 개인과 기업들도 상거래 분쟁을 민간 주도 조정으로 해결하는 문화에 익숙해질 날이 훌쩍 가까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