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보노보인가 침팬지인가
[세상 사는 이야기]보노보인가 침팬지인가(2021.7.10.)
진화 이전 두 유인원은
평화와 폭력 양극단의
대비되는 본능을 보였다
우리 안에 내재된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까
화가 폴 고갱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무엇인가?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림을 완성 한 뒤 왼쪽 구석에 이 물음(D' où Venons Nous/Que Sommes Nous/Où Allons Nous)을 써 넣었다.그게 제목이 됐다.
천박한 물질주의와 인위적 유럽 문명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남태평양 타히티를 찾아냈다.적도의 자연 풍광과 순박한 토착민에 매료됐다.1891년부터 그곳에 정착했다.건강은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궁핍했다.1897년 한 작품을 그렸다.한 해 내내 매달렸다.유서를 작성하는 심정이었다.완성 후 산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고갱은 직접 작품을 설명했다.오른쪽 세 여인과 아기는 순결한 생명의 탄생이다.가운데 과일 따는 젊은이와 과일 먹는 아이는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이다.왼쪽 생각하는 여인과 노파는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문명과 아직 동떨어진 곳에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과학서적 300권을 풀어 강론집을 쓴 언론인 출신 최준석 작가는 서문 첫 문장에 고갱의 이 제목을 인용했다.고대 동서양 철학자들부터 현대 인문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깨우침을 얻으려는 문제가 여기에 들어있다는 것이다.최작가가 정리한 과학서적들 가운데 진화생물학자들의 업적에서 경이감을 느꼈다.나의 시선은 프란스 드 발이라는 동물학자에 꽂혔다.그는 침팬지와 보노보를 연구했다.`침팬치 폴리틱스`와 `내 안의 유인원`이라는 저서를 통해 두 영장류를 비교하며 인간 본성을 탐구했다.유인원 가운데 인간에 가장 가깝게 진화한 동물이 보노보라는 걸 그에게서 배웠다.침팬지와 보노보는 250만년 전 갈라졌다.그 보다 300만년을 더 거슬러가면 인간과 침팬지,보노보는 같은 조상으로 만난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사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프란스 드 발의 연구에 따르면 보노보 세계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싸움이 없다.폭력을 쓰지 않는다.수컷의 지배도 없다.암컷이 사회를 이끈다.평화 만들기에 주력한다.공감과 평등주의가 넘친다.끼리끼리 성행위만 즐긴다.동성애도 포함된다.성행위를 통해 거의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반면 침팬지 세계에는 폭력적인 권력 다툼이 일상이다.수컷간에 경쟁자를 잔혹하게 제거한다.암컷을 차지하는데 필요한 투쟁이다.권력에 따라 수직적 관계가 구축된다.드 발은 “침팬지는 권력으로 성 문제를 해결하고, 보노보는 성으로 권력 문제를 해결한다”고 정리했다.
이전까지 동물학자들은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으로 침팬지 밖에 몰랐다.그래서 침팬지의 폭력성과 무자비한 권력추구에 기겁했다.진화의 단계를 보면 인간도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조건 지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인간은 폭력성을 띄고 동족을 죽이며 권력을 탐하는 본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추론으로 연결된다.보노보를 발견한 뒤 큰 변화가 왔다.평화 만들기에 익숙한 보노보의 본성을 보고 인간 종의 다른 잠재성을 새로 그렸다.침팬지에다 보노보를 더해 진화 이전 두 유인원을 놓고 인간은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지평을 넓혔다.
프란스 드 발은 이렇게 결론지었다.학자들이 보노보를 침팬지보다 먼저 발견했다면 인간의 진화에 관한 논의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라고.수컷의 지배나 폭력성 보다는 공감과 배려,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전개됐을 것이라고.그는 이렇게도 덧붙였다.침팬지 보다 더 잔인하고, 보노보 보다 더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은 양극성이 가장 심한 유인원이라고.우리 안에 잠겨있는 보노보와 침팬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공생을 위해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이냐다.경쟁이냐 협력이냐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