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명예훼손죄에 대하여(2022.8.27.)
[세상사는 이야기] 명예훼손죄에 대하여(2022.8.27.)
진실로 판명된 사실 말해도
명예훼손 형사처벌하는건
국가 형벌권 남용일 수 있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만으로
개인간 분쟁 줄일 수 있다
인격 침해를 당했다며 누군가로부터 제기한 소송에 휘말려본 경험이 있으면 쉽게 공감할게다.요즘 소송이 얼마나 넘치고 있는지를.특히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빌미로 한 소송사건은 쉽게 체감할 정도로 빈번하다.근래 10년만 봐도 2010년 2만2777건에서 2020년 7만9910만건으로 4배 가량 증가했다.
명예에 관한 죄는 고대 로마법에서 출발한다.법조문 중 인주리아(injuria)가 해당된다.고유한 의미의 명예침해(infamatio) 이외에 상해나 주거침입 그리고 비밀침해 같은 객관화된 인격 훼손을 포함하는 개념이다.이후 상해와 주거침입을 독립된 범죄로 명문화하면서 명예훼손죄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이후 각 국이 민,형사법을 마련하며 로마법을 본 따 관련 규정을 뒀는데 조금씩 다르다.
일본의 경우 명예훼손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성립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추상적 위험범으로 여긴다.명예가 현실에서 침해되어야 죄를 묻는게 아니라 그럴 위험이 발생하는 것만으로도 성립한다.다만 민사건 형사건 다음 3가지 요건에 해당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에 관련된 경우,목적이 공익성을 갖는 경우,사실의 진위를 따져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는 경우다.
미국은 명예훼손을 민사상 불법행위로만 간주하고 형사상의 범죄로는 보지 않는다.불법행위로 간주하는 명예훼손이란 가해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피해자가 아닌 제 3자에게 공개한 경우다.가해자가 피해자에게만 일대일 대화에서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다면 불법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피해자가 내용에 동의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내용이 진실인 경우 불법행위로 보지 않는다.한국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는 형법과 민법에서 모두 명예훼손죄를 규정한다.형법에서는 공연히(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가능성이 있게)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처벌을 받는다.제307조 규정이다.무엇보다 명예훼손죄는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만 성립한다.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는 친고죄인 모욕죄와는 달리 피해자측의 고소가 없어도 검찰이 기소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대한민국법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눈에 띈다.내용이 진실로 판명된 사실을 언급했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점이다.사실의 유무나 진위를 묻지 않는다.공공성과 공익성을 가지면 죄로 보지 않는 점은 다른 나라와 유사한데 진실성에 있어서는 확연하게 다르다.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했을 때만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유포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우리 형법에서는 타인의 명예를 고의로 비방하려했거나 훼손했는지 여부에만 매달린다.지난 2020년 헌법재판소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관련된 현행 형법 규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하지만 헌재의 교통정리에도 불구하고 이후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아직도 관련 결정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겁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존중하는 미국처럼 우리도 형법상의 명예훼손 처벌 규정은 없애는게 맞을까.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만 묻는 것으로도 충분할까.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옮겨가 미국 변호사로 변신한 김원근 씨가 쓴 <명예훼손>이라는 600쪽 넘는 대작은 일말의 답을 제시한다.저자는 수사기관을 통해 형사 처벌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한국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손해배상 책임으로 해법을 찾으려는 미국이라고 대별한다.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의 남용이라는 그의 주장은 되새겨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