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북아프리카 여행

이집트 카이로 ,아랍과 아프리카의 다리

joon mania 2015. 7. 19. 10:47

이집트 카이로 ,아랍과 아프리카의 다리



카이로의 교통체증은 살인적입니다. 거리에 신호등과 건널목이 없습니다. 누구나 차 머리를 들이밀고 보행자들도 목숨을 걸고 다닙니다. 공식통계로 길에서 교통사고로 죽는이들이 연 6천여명이라는데요. 비공식 통계를 합치면 1만명을 넘길 것으로 본답니다. 


나일강을 끼고 보이는 모스크 사원입니다. 뿌연 안개는 다름 아닌 모래바람에 흩뿌여진 공기입니다. 삼신이라고 불리는 모래 바람은 대단합니다. 눈을 뜨기도 어렵고 작은 모래와 자갈에 맞으면 따가울정도입니다. 보통 5월에서 9월정도까지 분다는데요. 3월초 였는데도 심한 모래바람이 불었습니다.


카이로 시내에 있는 이라크 대통령궁입니다. 위의 사진은 지난 3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이 무바라크 대통령과 정상회담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대통령궁 3층에 마련된 한쪽 회랑입니다.

이집트 대통령궁은 아부딘궁전으로 불리는데요. 과거 이슬람인 무아마드 알리 왕조의 이스마일 왕이 살던 곳이랍니다. 대대로 왕의 궁전이었는데. 1952년 나세르 대통령이 혁명을 일으킨 뒤 이곳을 대통령 관저로 이용해 지금까지 이른답니다.


이집트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기원전 8000년경 나일강 유역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해 인류 최초의 고대 문명을 만들어냈죠.

기원전 3100년경 메네스왕이 남북 이집트를 통합해 멤피스에 도읍을 정했다는군요,이후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할 땨까지 2800여년간 고대 이집트 이른바 파라오 왕조가 이어졌습니다.


고대 파라오 왕조는 30개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다는데요. 고왕조(10개:40명의 왕)-중왕조(7개:30명의 왕)-신왕조(13개:80명의 왕)로 나뉜답니다.

기자 피라미드를 만든 쿠푸왕과 아들, 손자는 4왕조때의 왕이랍니다.


황금마스크의 주인인 투탕카문왕은 신왕조시기인 18왕조이후 기원전 1567년 이후입니다.

람세스로 불리는 왕들은 어린 나이에 요절한 투탕카문과 그 뒤을 이은 아이왕에 이어 왕위를 계승한 장군 출신왕이예요.


알렉산더 대왕의 이집트 정복후에는 프톨레미 장군의 후손들이 이어가는 왕조인데요.이어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유명한 악티움해전에서 물리쳐 이집트를 속국으로 합병하면서 로마 지배시대로 갑니다. 이때 유입된 기독교 문화와 사원 등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요. 콥트교라는겁니다. 콥틱어도 남아 있습니다.


640년 이슬람은 당시 동로마제국의 지배아래 있던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이후 이슬람 시대가 열립니다.이때부터 콥틱 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랍어가 콥틱어를 대체합니다.

파티마 왕조- 아윱 왕조-맘룩 왕조를 거쳐 1516년부터 1805년까지는 오토만 터키가 이집트를 정복해 이슬람 종교 중심지로서 위상을 강화합니다.


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이집트를 지배합니다. 로제타 스톤도 이때 가져갔죠. 

프랑스의 이집트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터키 왕조에서 파견한 장군이 무하마드 알리 였는데요. 그는 이집트 정착후 근대 이집트의 기초를 닦고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그의 장손 이스마일은 대규모 국토개발로 외채 가 누적돼 식민지화의 길로 접어드는 다리 구실을 했습니다.

1882년 영국군이 알렉산드리아로 상륙하면서 1936년까지 영국의 지배가 이어졌습니다.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지만 11936년까지 영국의 실질적 지배가 계속됐죠.


현대 이집트는 1952년 낫세르 중령의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이집트 아랍공화국을 세우며 알렉산더이래 2300여년간 걸쳐 이뤄져온 이민족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낫세르 대통령은 19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제2 중동전쟁을 겪는 등 아랍의 자존심을 회복해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낫세르가 병으로 사망한 뒤 친서방 온건 노선을 추구하는 사다트 대통령이 취임해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으며 관계를 정상화했는데요.그는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후 1981년 현재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뒤를 이었습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낫세르의 아랍 민족주의와 사다트의 친서구주의 장점을 모두 활용하는 중도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아랍권으로부터 소외를 당했는데요. 이 때 아랍연맹 본부를 튀니지로 옮겨갈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참전하면서 아랍권의 중심으로 다시 재부상했습니다. 걸프전 직후 아랍연맹 본부를 다시 카이로로 옮겨온것은 그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간단한 이집트 말 몇가지.


감사합니다 : 슈크란

천만에요 : 아프완 (알라프)

안녕하세요 : 앗 쌀라무 알라이쿰

안녕히 가세요 : 마앗 쌀라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 푸르쌋 싸이다

이거 얼마입니까 : 비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