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특파원칼럼] 美 전문직 비자 확대는 신기루? (2008.3.19.)

joon mania 2015. 7. 25. 10:43

[특파원칼럼] 美 전문직 비자 확대는 신기루? (2008.3.19.)



30여 년간 경제 관료를 지낸 오종남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사가 최근 워싱턴DC에서의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적 효과를 한쪽만 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교역의 장벽 해소만 주목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FTA 이후 물꼬가 터질 인적 자원의 진출이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한ㆍ미 FTA의 조속한 처리를 바라는 이들 중에는 그 이후 우리가 따낼 의미 있는 과실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전문직 취업비자(H1-B)` 쿼터 배정이다. 


미국 내 사업자가 특별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취업비자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연간 쿼터는 6만5000개. 신청자가 매년 늘어 작년에는 접수 하루 만에 꽉 차버렸다. 15만여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자를 받지 못했다. 올해에는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지난 12일 의회 초청 연설에서 미국이 글로벌 혁신 리더로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와 이민정책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게이츠는 "유능한 외국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자 제한을 풀어야 한다"며 전문직 취업비자의 연간 쿼터를 확대해달라고 주문했다. 


미국은 사실 해외 고급 인력 유치에 어느 나라보다 열심이다. EB1(최우선 취업 1순위), EB2(전문직 2순위), H-1B(특수기능 종사자) 등의 비자를 한 해 14만명 이상에게 발급하고 있다. 


미 이민통계국에 의하면 한국은 유학생(F-1)과 교환연수(J-1) 비자 승인 국가별 순위에서 1위다. 일본 중국 인도 독일보다 많다. 반면 H-1B 비자 취득에서는 1만1370명으로 9번째에 불과하다. 수많은 인력들이 유학와서 공부를 마쳐도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ㆍ미 양국은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의회 비준을 마친 뒤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을 위한 협의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특히 지난해 6월 FTA 추가 협상에 응하면서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배정을 우리가 그에 상응해 따내야 할 현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리품처럼 얻어낸 미국 방문비자 면제만큼이나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가 중요하다. 


미국은 2004년 1월 발효된 싱가포르와의 FTA까지는 전문직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상대국에 별도의 쿼터를 배정해 줬다. 싱가포르는 5400개를 받았다. 호주는 FTA 체결 후 더 좋은 조건의 E3 비자 1만500개를 받았다. 


하지만 이민정책 권한을 쥐고 있는 의회가 행정부에 제동을 걸었다. FTA 체결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을 의회와 별도의 협상을 통해 협의토록 바꿔버렸다. 한국은 FTA를 최종 승인받은 뒤 따로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 협의를 의회와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FTA에 대한 의회 비준 자체가 불투명하니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 협의는 아예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FTA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ㆍ미 FTA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우리 앞마당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전문직 취업 비자를 통해 인력 이동도 활발해진다. 


그렇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는 FTA나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 확보나 요원한 일이다. 모두 신기루에 불과할 것 같다. 


[윤경호 워싱턴 특파원 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