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무장관에 중국계 게리 로크 前워싱턴 주지사 지명(2009.2.27) | ||||||||||||||||||
아시아계 출신 3명으로 늘어...재정적자 감축에 강한 추진력 | ||||||||||||||||||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서부 시애틀 지역 킹 카운티의 행정책임자로 선출됐는가 하면 1997년 역시 중국계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주지사에 선출돼 8년간 재임했다. 1950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시절까지 시애틀에서 보낸 뒤 동부 아이비리그인 예일대학으로 진학한다.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로크는 보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검사로 일하다 1982년 워싱턴주 주의원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11년간 주의원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시애틀 지역 킹 카운티 행정책임자 선거에서 당선된 뒤 1996년 민주당 내 주지사 경선에서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고 1997년 주지사 선거에서 최초의 중국계 당선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2000년 재선된 그는 2001년 극심한 경기 침체 때 세금 신설 또는 증세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정책과 함께 재정 지출 감축에 나섰다.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주정부 공무원이 해고됐고 의료보험 지원이나 복지 혜택을 삭감하기도 했다. 그의 강력한 추진력은 전국적으로도 관심을 끌면서 민주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등 떠오르는 스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2003년 초에는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에 대한 반박 연설자로 뽑히기도 했다.
당시 시애틀 지역의 한 언론은 "부시 대통령 연두교서 연설에 대한 반박 연설 후 쏟아진 그에 대한 비난과 모욕적인 협박이 그의 정계 은퇴 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주지사 사무실에는 수백 통의 협박 편지와 이메일, 심지어 아이들을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계를 떠난 로크는 이후 시애틀 소재 데이비스 라이트 트리메인 법무법인에서 중국과 미국 간 대정부 업무 부문에서 일했다. 워싱턴 주지사 재임 중에는 8차례나 무역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고 광저우에 워싱턴주 무역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중국과 교역 확대에 앞장섰다. 로크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그러나 2008년 12월 AP통신은 그를 내무부 장관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보도한 바 있다. 로크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오바마 내각에서는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과 함께 아시아계 장관이 3명으로 늘어난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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