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醫 상담 숨기는 풍토 못바꾸면 헛일(2012.6.26.
요즘 정신질환은 더 이상 특정한 사람들만 앓는 병이 아니다. 성적이나 입시 부담에 시달리는 학생, 일상에서 업무 강도나 실적 때문에 압박을 받는 직장인, 심지어 주부에게도 찾아온다. 보편적인 우울증이나 아이들에게 많이 오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 연애인에게 나타나는 공황장애 등은 현대병이다. 한 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현대사회의 치열해진 경쟁 풍토가 낳은 사회 병리 현상 중 하나로 봐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내년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생애 주기별로 정신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검진을 받도록 추진한다니 바람직한 일이다. 또 정신과 검진이나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험 가입이나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신질환자 범위를 엄격하게 좁히겠다고 한다. 약 처방 없이 상담만 받으면 건강보험 등 문서에 정신질환으로 명명하지 않고 일반 상담으로 표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신질환자 규모가 현재보다 3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추산이다. 지난해 실시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응답한 이는 조사 대상 중 14.4%에 달했다. 국민 전체로 환산하면 519만명에 이른다. 정신질환에서 연유되는 사례가 많은 자살 지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0년 기준 10만명당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였다. 10~30대 사망 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일 정도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 가운데 병원이나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고 치료를 받는 사례는 전체 중 15%에 그치고 있다. 정신병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도록 만들기 때문에 숨긴다. 이른바 낙인효과다. 국가공무원법과 의료법을 비롯한 70여 개 법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취업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가벼운 우울증 정도는 적절한 약물 치료로 쉽게 치유될 수 있는데도 이런 현실적 장벽이 병을 만성으로 키우고 치료 비용도 더 들게 하는 것이다. 이제 치료 서비스 문턱을 낮추기 위한 여건을 마련한 만큼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