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3년만에 부부강간죄 인정한 대법원 판결(2013.5.18.)

joon mania 2015. 8. 18. 18:48
43년만에 부부강간죄 인정한 대법원 판결(2013.5.18.)
 
대법원이 그제 정상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라도 남편이 폭력과 협박을 통해 강제로 아내와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민법상 부부간에는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970년 대법원은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는 부부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43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또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객체(피해자)인 '부녀'에 법률상 아내도 포함된다고 봤다.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부부 관계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을 침해했다면 국가가 개입해 형벌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면 가정 붕괴가 가속화하고 이혼 소송 등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염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고 처벌해왔다. 1984년 미국 뉴욕주 항소법원은 "혼인증명서가 아내를 강간하는 면책특권은 아니다. 기혼 여성도 미혼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지닌다"고 판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부 강간에 대해 처벌을 더 높게 하고 있다. 유엔은 1999년 한국이 부부 강간을 처벌하지 않는 데 대해 '염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부부 사이든 아니든, 기혼 여성이든 미혼 여성이든 여성의 존엄성과 성적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대가 변했다"고 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우리 사회에는 성폭행 성추행 등 성범죄가 갈수록 만연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언제든지 제압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사회 지도층의 권력형 성범죄도 유독 잦다. 왜곡된 성(性)인식과 그릇된 성(性)문화는 여성과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안전과 품격을 위협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처럼 국격을 훼손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는가. 
이번 판결이 한국 사회의 잘못된 성(性)인식과 성(性)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비인격적인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과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품격 있는 사회,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