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논문심사비·레슨비 이중구조 (2017.1.6.)

joon mania 2017. 1. 5. 17:46
[필동정담] 논문심사비·레슨비 이중구조 (2017.1.6.)
          

수준 높은 선생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공식 창구가 있다는 얘기에 귀가 번뜩 열렸다. 음악에 문외한인 부모로서 지름길을 몰라 답답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 음악을 공부하는 아이의 어린 시절 얘기다.

예술의전당 영재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였다. 미국 음악전문학교인 컨서버토리에서 운영하는 프렙스쿨(preparatory school)을 본뜬 것이다. 초등부터 고등학생까지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엄격하고 객관적인 심사에 믿음이 갔다. 쟁쟁한 경력의 강사나 교수들과 일대일로 엮여 주말에 레슨을 받았다. 매 학기 행정처에 등록금만 내면 다른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개인별 레슨을 시작한 후 사정은 달라졌다.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에 못 채운 걸 교수의 사적인 장소에서 보완해야 했다. 따로 찾아갈 때는 매번 별도의 레슨비를 갖다줬다. 남들도 그렇게 하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항변할 도리 없이 공적 창구와 사적 창구가 뒤섞이는 이중구조에 포획돼 버렸던 셈이다.

대학에서 석사나 박사 등 학위논문 심사 때 건네는 심사비도 버젓이 이중구조가 통용된다. 등록금에 논문 심사비를 합쳐 내는데 별도로 논문 작성자에게 부담을 지운다. 연세대와 중앙대는 등록금만 내면 되는 반면, 서울대와 고려대 등은 추가로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외부심사위원에겐 교통비나 식비 등 거마비를 더 주는데 이를 논문 작성자가 담당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 28일부터 발효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에서는 학위논문 심사료와 관련해 심사교수에게 식비 등을 제공하면 학생과 교수 모두 제재 대상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 바람에 외부 교수들이 다른 학교 학생의 논문 심사를 꺼리고 있다고 한다. 시간을 내서 교통비와 식비에 자기 돈까지 써야 하니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다. 대학교수에게 학생의 학위논문 심사는 비용을 받지 않고 해야 할 일상적인 업무여야 한다. 외부 심사위원을 위촉한다면 그 비용은 당연히 학교가 내는 게 맞는다. 음악 레슨이든 학위 논문 심사든 공적으로 정한 규정과 별도의 사적인 보상을 묵인하는 이중구조는 속히 없어져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겉 다르고 속 다른 건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