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의사 올리버 에비슨 (2017.2.22.)

joon mania 2017. 2. 22. 14:11

[필동정담] 의사 올리버 에비슨 (2017.2.22.)    

          

구한말 우리에게 서양식 현대 의학이 전수된 역사에는 3인의 중요한 외국인이 등장한다.

먼저 호러스 알렌이다. 선교사이자 의사로 1884년 조선에 들어와 갑신정변 때 자상을 입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낫게 하며 고종 황제와 가까워졌다. 고종의 명을 받아 이듬해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개명)을 설립해 의료사에 의미 있는 획을 그었다.

다른 둘은 올리버 에비슨과 루이스 세브란스다. 캐나다 토론토의대 교수였던 에비슨은 조선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언더우드의 강연에 감동받아 1893년 33세 때 조선으로 건너왔다. 옻나무 알레르기를 일으킨 고종을 치료하면서 왕실의사인 시의로 발탁됐다. 안식년 때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 달려가 동쪽 나라 조선에 현대식 병원을 지어주자고 호소했고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의 기부금 1만5000달러를 얻어 방치돼 있던 제중원을 재건축해 1904년 세브란스병원과 의학교로 탄생시켰다. 이후 에비슨은 의학 교육에 힘써 1908년 최초로 면허를 취득한 한인 의사 7명을 시작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길러냈다.

7인의 의사들은 시대를 앞선 이들답게 줄줄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면허 1호 홍종은과 7호 신창희는 상해에서, 2호 김필순과 4호 박서양은 간도로 망명해 진료소를 열고 독립군 군의로도 활동했다. 박서양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부친을 백정이라며 모두 외면할 때 에비슨이 주저 없이 거둬 치료한 인연으로 기독교에 입문해 의학교까지 들어갔다. 신분제 사회 끝 무렵 최하층 백정의 아들이 의사가 된 소설 같은 얘기는 이후 드라마로도 다뤄졌다. 1911년 졸업생 이태준은 몽골로 건너가 당시 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하며 그 나라에 서양 의술을 전수했으니 에비슨을 그대로 배운 셈이다.

알렌은 외교관으로 변신해 주한 미국 공사와 총영사를 지내며 20년간 머물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에비슨은 우리 땅에서 40년간 일하며 의학 발전에 기여했는데도 일제 강점기와 겹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백수십여 년 전 서양식 의술에 담을 쌓고 있던 조선을 깨워준 알렌과 에비슨의 족적을 접하면서 과연 그들의 행동이 선교사로서의 사명감만으로 가능했을까 궁금했다. 이젠 대한민국의 의술을 우리보다 낙후된 나라에 전수하는 게 후예들이 할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