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아티스트 디플로머(2017.3.8.)
대중에게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학술학위에는 학사, 석사, 박사가 있다.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서부터 공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마다 공통이다. 의학박사는 MD(medical doctor), 법학박사는 JD(juris doctor)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나머지 모든 박사를 호칭하는 Ph.D.(philosophy doctor)의 필로소피는 개별 학문으로서 철학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학문 전체를 뜻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후학을 가르치거나 학문적으로 입지에 오른 이에게 줬던 벼슬로 박사라는 호칭이 쓰였다.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과 규장각 등에 박사를 뒀다.
음악 분야에는 석사와 박사 사이에 별도의 학위가 있다. 아티스트 디플로머(Artist Diploma)다. 전문 연주자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1년 혹은 2년짜리로 석사과정 다음이지만 박사과정과는 엄연히 다르다. 박사과정은 연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음악학 이론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반면 아티스트 디플로머는 연주자로 가기 위해 밟는 코스다.
프랑스 국립음악원(Conservatorio)을 비롯해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대학과 길드홀음악학교의 아티스트 디플로머가 유명하다. 미국에도 줄리아드스쿨이나 피보디 컨서버토리에 아티스트 디플로머가 있다. 학부에는 음대를 두지 않지만 석사와 박사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예일대학도 아티스트 디플로머 과정을 두고 있다.
같은 명칭의 아티스트 디플로머라고 내걸더라도 석사나 박사 등 학위 수여 자격을 지닌 공식 대학과 학위를 줄 수 없는 사설 음악원은 엄격하게 구분된다.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지 못하는 곳에서 받은 아티스트 디플로머는 학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014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서 신임 교수 공채 때 시끄러웠던 테너 S씨의 경력에 적혀 있던 미국 필라델피아음악원 아티스트 디플로머는 대학이나 컨서버토리 같은 공식 교육기관에서가 아니라 학위를 수여할 수 없는 사설 음악학교에서 받은 것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측 탄핵 심판 변호인단에서 최순실과 박 대통령 관계를 빗대 십여 년 전 당시 청와대 고위직 인사와 염문을 뿌려 주목을 끈 미술계 큐레이터 신정아 씨의 가짜 학위를 다시 거론해 아티스트 디플로머가 생각났다.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