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기업사랑 나라사랑(2018.1.1.)

joon mania 2018. 12. 19. 17:55

[사설] 기업사랑 나라사랑(2018.1.1.)


18년 만에 다시 꺼내 든 매일경제의 화두
"기업인 여러분 힘내세요" 응원과 격려를
기업을 칙사 대접은 못해줄망정

10년을 넘게 기다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가 됐다. 20년 전 외환위기의 충격을 극복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를 넘어 이제야 겨우 중진국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황금 개띠인 무술년(戊戌年) 새해 첫날을 맞는 우리는 어렵사리 달성한 이 경제 성과들이 허무하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 위기감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주체의 중요한 한 축인 기업에 대한 증오와 멸시와 몰이해다. 기업이 잘돼야 경제가 잘되고, 경제가 잘돼야 국가가 잘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애써 부인하고, 어떨 때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매일경제는 1999년 신년 화두를 '기업사랑 나라사랑'으로 정했다.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기업을 사랑하고 칭찬해줘야 그들이 자신감을 갖고 보국(報國)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겨나고, 세금이 많이 걷히고, 나라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보았다. 위기 극복의 주역은 다름 아닌 기업임을 인정했다. 우리는 자부한다. 그 당시 '기업사랑 나라사랑' 캠페인이 환란을 조기에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매일경제는 18년이 지난 올해, 이 슬로건을 다시 꺼낸다. 먼지 쌓인 과거의 일기장을 다시 꺼내 보는 심정으로 우리는 올해 기업 사랑이 나라 사랑임을 다시 마음에 새겨보고자 한다. 환경은 더 악화됐다. 기업은 이제 경제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렸다. 대한민국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로 규정된다. 그런 인식을 돌려놓지 않는 한 기업은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떠날 것이다. 이유는 18년 전과는 좀 다르다. 당시 우리 앞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이 흥망성쇠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여기서 무너지느냐, 아니면 4만달러, 5만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의 분기점이다.
기업들의 역할과 공로를 외면한 채 일부 문제를 과도하게 확대해 기업과 기업인을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벌들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하는 공정거래위원장, 스스로를 촛불혁명의 주축이라 주장하며 '노동자 중심 재벌 개혁'을 부르짖는 노동단체. 기업은 질타와 개혁의 대상이다. 이래서는 우리 경제에 미래가 없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경제가 모처럼 맞는 좋은 기회다. 수출이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하고 있는 이때에 기업들은 연구개발과 투자에 매진하면서 새로운 경쟁에 대비해야 정상이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드론이 날고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인공지능(AI)과 대화하는 이 기술전쟁에서는 당장 1~2년 이후도 내다보기 힘들다. 그 숨 가쁜 전쟁에서 경쟁에 몰두해야 할 우리 기업들이 내우외환에 빠져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 세탁기, 반도체, 철강 등에 반덤핑관세를 매기고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까지 적용할 정도로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내세운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엉뚱한 구실 삼아 무차별 경제 보복을 펼치고 있다. 밖에서 공세가 있더라도 안에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면 극복할 수 있다. 기업들이 지금 할 말 제대로 못하면서 속앓이를 하는 건 바로 이런 대목이다. 안에서의 공세가 기업들엔 더 아프다.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압박당하고 있다. 미국은 35%에 이르던 법인세율을 21%로 파격적으로 낮춰 투자를 유인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다. 대기업들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오히려 높였다.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은 칙사 대접을 받는다.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법인세 제로(0) 정책과 외국인도 온라인으로 15분 만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해제로 전 세계 스타트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세금·노사 문제 등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기업이 외국에 나가 만든 일자리는 162만여 개로 10년 전보다 109만개 증가한 반면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만든 일자리는 27만여 개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지 않고 왜 한국에서 기업을 해야 하는지 정부가 이제 역지사지해서 따져봐야 한다.
최저임금은 새해에 급격하게 인상된다. 임금이 가계에는 소득이지만 기업에는 비용이다. 임금 인상으로 생산비용이 올라가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떨어지고 결국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치자 정부 예산으로 최저임금 인상액을 보전해주는 초유의 실험까지 동원했다. 수십 년간 땀 흘려 쌓아올린 원자력발전 기술은 한순간에 '탈원전' 정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태양력·풍력이 대체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과 온갖 종류의 복지 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가 포퓰리즘 정책은 파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남미 국가들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 길을 밟을 수는 없다. 다양하고 유연한 근로 형태를 적용해야 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정규직을 획일적으로, 그리고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5년마다 선거로 교체되는 정권은 다음 정권에 자리를 물려주면 그만이지만 국민과 기업은 이 모든 경제 정책의 부작용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경제정책은 예측과 적응이 가능하도록 단계적이고도 점진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안 그러면 실험이 된다. 국가 경제를 놓고 국민을 볼모로 실험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새해에는 3만2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제 소득 4만~5만달러대로 점프해야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기업 혁신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4차 산업혁명 전쟁터에서는 기존에 없던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기업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상상하고 도전해볼 수 없다면 곧바로 뒤처지게 된다. 규제 철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규제 폐지의 핵심은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이다. 노조, 의사, 약사, 택시운전사 등 곳곳에 도사린 기득권층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모든 개혁과 혁신은 제동이 걸린다. '규제 샌드박스'를 마련해줄 정부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 특혜 소지를 거론하며 2년째 '규제프리존특별법'을 막아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지금 그 혁명을 추동할 주역이 기업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지 못하는 이유를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멸시와 몰이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불합리와 모순을 개선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기업 역시 이런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증오에 눈멀어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멸시로 세계화의 흐름을 역류시키고, 몰이해로 혁신과 도전을 억누르는 질풍노도는 대한민국의 앞길을 막는 적이다.
"기업인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응원과 격려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무술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