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가보지 않은 길 가는 통화정책, 기업투자 못 살리면 헛일이다(2019.10.17.)

joon mania 2020. 2. 24. 14:51

[사설] 가보지 않은 길 가는 통화정책, 기업투자 못 살리면 헛일이다(2019.10.17.)


      

한국은행이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1.25%로 낮춘 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상 예상됐던 결정이다. 경기 둔화 조짐이 갈수록 짙어지면서 저성장 우려에다 디플레이션 논쟁을 벌일 만큼 저물가까지 더해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노딜 브렉시트 등 혼란스러운 대외 여건에 세계 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기만 한다. 마이너스 금리로 이미 진입한 유럽 외에 미국 중앙은행도 지난달 금리 인하에 가세해 한은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넓어져 있었다.
한은이 금통위원 7명 중 2명의 동결 의견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건 성장세 둔화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한은에서 내놓았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 2.2% 달성이 녹록지 않다고 이주열 한은 총재조차 수차례 언급했다. 하루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이 당초 2.6%였던 올해 한국 경제 전망치를 2.0%로 끌어내렸을 정도다. 한은은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문에서 "지난 7월 성장 전망 경로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털어놓았다. 수출은 9월까지 10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행진이다. 설비투자 역시 뒷걸음질이고 그나마 버텨주던 소비도 부진해지고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관심은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인지다. 연 1%로 간다면 통화정책이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셈이다. 이 총재는 "금리를 낮추면 실물경기를 북돋는 긍정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금융 안정 측면에서는 부담이라고 인정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가 이미 실효하한에 근접해 더 내리더라도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고, 가계 부채를 키울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집값을 자극하며 부동산 거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큰 걸림돌이다.
그럴수록 금리 인하에 따른 자산 거품을 억제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중요하다. 화폐 유통 속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도 좀처럼 소비와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적 장벽에도 유념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금리 인하로 생기는 동력이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이 생산 부문으로 흘러들어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정책 조합에 나서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 투자를 되살릴 과감한 규제 개혁과 노동 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 재정·통화정책을 통한 돈풀기는 되레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