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기부의 추억(2020.5.30.)
언론인과 시민으로서의 도리
제대로 다하지 못한 자책감을
10여년 기부금으로 메웠는데
정의연의 납득할 해명 없으니
이체 중단하고 지켜봐야겠다
나의 기부는 미안한 마음의 표시였다.그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였다.지금은 정의기억연대로 바뀌었다.사실 기부 대상은 피해자 할머니였다.하지만 개인적으로 건넬 방법을 찾지 못했다.관련 운동을 펼치는 단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부하려고 나선데엔 사연이 있다.워싱턴DC에서 특파원으로 일 할때다.2007년 2월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 하원 청문회 증언대에 섰다.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가 성 노예로 유린했던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 할머니 이야기다.용기 있는 증언과 활동가들 노력으로 2007년 7월 미 하원은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2차대전 때 자행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미국 땅에서 한국과 일본간에 벌인 외교전의 승리 운운할 일이 아니었다.공소 시효나 시간 경과를 떠나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한 지탄이었다.당사자와 무관한 제3자들이지만 인류 공통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꾸짖음이었다.
할머니의 하원 청문회 증언 때 하필 워싱턴DC에 없었다.겨울휴가를 얻어 동북부 어느 시골에 갔다.특파원으로서 현장 분위기를 전하지 못한 자책감이 컸다.이국 땅에서 고발에 나선 할머니를 응원하지 못한 미안함은 더 크게 느껴졌다.꽃다운 나이에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당했지만 아픔을 이겨내고 나선 분에게 시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그래서 찾아낸 방안이 기부였다.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바로 신청했다.급여에서 매월 일정액 자동이체를 시작했고 10여년을 이어왔다.정의기억연대는 지정기부금 단체다.덕분에 연말정산 때마다 기부금의 15%를 세액공제 받았다.못다했던 책임을 기부로 메우면서 위안을 삼으며 지내왔다.스스로 발부한 면죄부인지도 모른다.
지난 5월7일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전 이사장을 향한 문제제기에 눈길이 확 쏠렸다.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언론의 후속보도엔 화가 났다.수십억원을 넘는 정부보조금과 기부금 가운데 영수증도 없이 쓰인 돈이 너무 많았다.안성 쉼터 매매를 둘러싼 엉성한 정황을 보면 한심했다.정의기억연대의 해명은 혀를 끌끌 차고도 남을 정도로 엉성했다.이 할머니의 25일 최후통첩 같았던 두 번째 기자회견에 29일 윤 전 이사장이 결국 직접 해명했지만 의혹 해소엔 많이 모자랐다.검찰 수사 발표를 기다리지 말고 정의기억연대가 자체 점검 내역을 속히 밝혀야한다.
과거 벌어졌던 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분은 윤정옥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였다.여성들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공장터에 몰아갔던 역사를 정리한 이효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도 개척자다.이들의 선구적 노력을 모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단체가 출범한게 1990년이었다.1992년 1월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는 1500회를 향해가고 있다.위안부 운동은 윤 전 이사장 한 사람의 공이 아니다.그의 비례대표 국회의원행이 30년 이어진 위안부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했을지도 모른다.이용수 할머니의 분노가 여기서 촉발됐을 수도 있다.징병,징용,정신대,위안부 등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배를 통해 저지른 만행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규명하는게 먼저다.가해자의 반성과 사죄가 필수다.보상과 배상은 그 다음이다.이런 통과의례를 다 거쳐야 화해와 용서가 가능하다.아직도 진행형이다.
비록 알량한 규모지만 정의기억연대에 낸 기부금이 어디로 쓰였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나에게는 있다.정의기억연대의 회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기부금이 본래 목적과 다른 곳에 유용됐는지 밝혀져야한다.검찰의 강제수사와 별개로 기부자들에겐 상세하게 설명돼야한다.아직도 정의기억연대로부터 연락이 없다.그래서 이번 달 이체를 마지막으로 나의 기부는 중단했다.일단 멈췄다가 내 기부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꼼꼼히 따져본 뒤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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