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컬럼

[세상사는 이야기] 여름꽃 잔치(2021.8.7.)

joon mania 2021. 8. 7. 17:08

[세상사는 이야기] 여름꽃 잔치(2021.8.7.)

한여름 뙤약볕 아래
피는 꽃들은 오묘하다
인간은 발버둥 쳐봐야
자연의 한 쪽일 뿐인데
순리를 거스를 수 있겠나

 

비 온 뒤 아스라한 숲속 안개를 뚫고 걸었다. 함백산 중턱 만항재 산길 야생화 군락장이다. 태백과 정선, 영월이 경계를 맞대는 해발 1330m 부근이다. 며느리밥풀 꽃, 벌개미취, 모싯대, 당귀 꽃, 용머리 꽃 등 여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들을 다시 만났다. 근처 백운산까지 여름 야생화 잔치가 펼쳐진다.

제각각 자리 잡은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겨 걸음을 옮기기가 아쉽다. 야생 꽃과 풀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 콕 집어 설명해주지 않으면 문외한에게는 잘 안 띈다. 바다 부근엔 메꽃, 육지엔 나팔꽃이 각각 여름철 대표선수라는데 이조차 몰라보는 수준이면 말해 뭐하겠나.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대한민국 국화인 무궁화도 여름 꽃이다. 요즘엔 동네 길가에서 만나는 여름 꽃도 많다. 닭의장풀이나 능소화다. 닭의장풀은 달개비로 불린다. 푸른색 덕분에 천연 염색 재료로 쓰이는 유용한 꽃이다. 능소화는 나팔 모양에 주황색이다. 업신여길 능, 하늘 소, 꽃 화라는 뜻풀이를 그대로 따르자면 하늘을 업신여기듯 기어올라가 피워낸 꽃이다.

병아리난초와 꿩의다리 그리고 바위채송화까지 삼총사는 마니아들 영역이다. 아내는 관악산과 북한산에 이 꽃들을 보러 자주 찾아간다. 난초과로 병아리들이 줄지어 어미를 따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병아리난초는 앙증맞게 예쁘다. 꿩의다리 중 자주색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금색 꽃술의 분홍빛 꿩의다리를 보려면 다리품깨나 팔아야 한다. 바위채송화는 건조한 바위 위 이끼가 말라 죽은 곳이나 먼지 쌓인 곳에서 자란다. 여름 꽃 중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는 건 나리꽃이다. 나리는 백합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장미나 국화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렇지만 눈길은 쉽게 닿아도 발길은 닿기 어려운 곳에 주로 꽃을 피운다. 바위 틈을 좋아해서 그런 듯하다. 맨 먼저 피는 건 털중나리다. 중나리, 하늘나리, 땅나리 등도 있는데 솔나리가 맨 나중에 핀다. 잎이 소나무 솔잎처럼 생긴 솔나리는 분홍빛이다. 높고 깊은 산속에나 가야 만난다.

한여름에 피는 연꽃들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재미있다. 연꽃은 뙤약볕 아래에서 꽃을 피우는 수생식물이다. 오후엔 꽃이 져버리니 오전에만 볼 수 있다. 꽃의 크기가 가장 큰 것은 백련이다. 잎의 크기로는 가시연꽃이 으뜸이다. 2m짜리 잎도 있어 어떤 식물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가시연꽃은 제 잎을 찢고 마치 자기 살을 파고 올라오듯 꽃을 피운다. 연꽃의 한 종류이지만 수련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연꽃과 많이 다르다. 늪이나 연못에서 물 위에 꽃을 피우니 물 수(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잠잘 수(睡)다. 정오 무렵에 꽃을 피웠다가 저녁엔 오므라들어 잠을 자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었다. 홍련이나 백련은 꽃대를 높이 솟아오르게 한 뒤 꽃이 자리를 잡는다. 수련은 꽃대 없이 잎에 바로 꽃이 붙어 있다. 양평 세미원, 시흥 관곡지, 부여 궁남지 등 연꽃 명소에 가면 한눈에 즐길 수 있다.

계절이 바뀌면 아내를 따라가 꽃 향연에 꼭 빠져본다. 아쉽게도 나는 봄꽃, 여름 꽃에서 단지 계절의 변화만 보는 데 그칠 뿐이다. 성하의 뙤약볕을 즐기는 식물과 그걸 피해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식물의 공존을 보면 자연의 오묘함에 겸손해져야 한다. 죽은 나무 밑동의 이끼나 고목 위에 핀 버섯이 하찮게 여겨지지 않고 존중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끼와 버섯은 새와 곤충, 벌레에게 먹이가 된다. 새와 곤충은 씨앗을 퍼뜨려 생태계를 지속시킨다. 꽃과 풀을 배울 때마다 자연의 이치를 얼마나 터득했는지 스스로 묻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순리를 거스르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