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컬럼

[세상사는 이야기] 빵 이야기 (2022.4.9.)

joon mania 2022. 4. 10. 08:48

[세상사는 이야기] 빵 이야기 (2022.4.9.)

납작빵 수천년 함께 했지만
서민들이 빵을 쉽게 먹은건
건조효모 대량생산 이후다
아파트값에 표 갈린 대선도 
현대판 `빵 투쟁' 아닌가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빵이라는 표현은 포르투갈어다.팡으로 발음해야 맞는데 일본에 먼저 전파된 뒤 경음화를 거쳐 빵으로 자리 잡았다.프랑스어 스페인어도 비슷한 발음이다.영어,독일어,네덜란드어는 브레드 혹은 브로트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카스텔라도 포르투갈에서 비롯됐다.달걀 흰자를 오래 저어 설탕과 반죽해 만든다.스페인 중부 카스티야에서 시작된 과자였는데 이웃나라로 넘어간 뒤 유래 지역명을 따 카스티야로 부르다 포르투갈식 카스텔라가 됐다.카스테라라는 받침 없는 발음은 포르투갈 수도사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전한 뒤 일본식으로 바뀐 것이다.일본에 전해진게 16세기 초엽이라 나가사키에는 400년 넘은 카스테라 전문점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빵의 출현은 농경사회와 궤를 같이 한다.신석기 시대 말기인 1만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초기엔 야생 곡물을 빻아 물로 반죽해 구운 단순한 방식이다.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발효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영어로 플랫 브레드라 부르는 납짝빵이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젠에서 이란, 터키에 걸치는 코카서스산맥 부근에서는 고대부터 땅에 묻어놓은 화덕 벽에 얇게 민 밀가루 반죽을 붙여 구워낸 라바시 라는 빵을 동네사람들이 모여 굽는 전통이 이어진다.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돼 등재됐다.인도의 난 이나 멕시코의 토르티야 같은 생김새다.토르티야의 재료인 옥수수는 밀이나 보리에 견주는 중요한 곡식으로 마야문명을 일궈낸 원동력이었다.
발효빵은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밀과 보리로 반죽하고 공기 속 효모를 활용해 부풀어진 천연발효빵을 만들어낸 것이다.나일강 유역 비옥한 땅에서 수확된 곡물 덕분이다.천연으로 배양한 발효종을 이용해 빵과 술을 대량으로 만들면서 노동에 대한 댓가로 빵과 술을 지급했다.피라미드 부근에 대규모 빵굼터와 양조장터가 함께 발견된다.재미있는 대목은 부풀어 오른 반죽 일부를 떼어뒀다가 다음에 사용하는 스타터 개념을 이때 이미 터득했다는 점이다.하지만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작용을 효모나 박테리아가 한다는건 19세기 후반에서야 과학적으로 알아냈다.오랜 빵의 역사에서 보면 많이 늦었다.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덕분이다.이후 건조효모가 대량 생산되고 이스트를 사용해 가정에서 간단하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됐다.빵이 누구에게나 가까워진건 얼마 안되는 셈이다.
러시아 인민들이 먹는 초르니흘렙이라는 검은 빵은 땀과 눈물을 머금고 있다.가을걷이를 끝내봐야 주된 곡물인 밀과 보리는 영주에게 다 빼앗기고 겨우 남긴 호밀 같은 잡곡으로 만든 빵이었다.옥수수나 귀리까지 섞다 보니 거칠고 딱딱해져 전쟁터에서 베게로 쓸 정도였다.
요즘엔 대중에게 익숙한 크루아상이라는 프랑스 빵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됐다.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가며 프랑스에 전파했다.그런데 프랑스에서 다시 이탈리아로 넘어가 꼬르네또로 발전한다.겉모양은 비슷한데 크루아상은 버터를 많이 넣어 바삭거리고 꼬르네또엔 설탕을 더 넣어 부드러운 맛감이 강하다.중세와 근대 유럽 나라에서 각국 왕실과 유명 가문을 섞는 결혼으로 음식 문화가 이렇게 퍼졌다.
이영숙 작가의 `빵으로 읽는 세계사`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담겨있다.군주나 귀족 등 소수의 지배력이 강했던 시절엔 서민들까지 빵을 먹을 만큼 넉넉하게 곡물을 생산하지 못해 죽 같은걸로 떼우기에 급급했다.시민 누구나 빵을 쉽게 먹게 된 시기는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길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길고도 험난했다.
지난달 치러진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도 아파트값에 비례해 표가 갈렸다.현대판 `빵 투쟁`이었던 셈이다.빵은 소중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투영한 민낯의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