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금란지교

joon mania 2023. 12. 20. 09:27

그와의 금란지교(金蘭之交)를 평생 이어가련다

 

 

윤경호 / 언론인 (전 매일경제.MBN 논설위원)

 

그가 2004년 봄 17대 국회의원 총선에 나섰을 때 글을 썼다.

`내가 아는 양기대` 라는 내용이었다.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사자성어를 감히 인용했다.그와 나의 관계를 그렇게 빗대어 비유했다.두터운 친구 사이를 말하는 한자 단어 가운데 어떤 표현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서였다.공자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이다.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만큼 강하고, 그 향기가 난초와 같이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이다.오랜 동안 변함 없는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 사이를 이 보다 더 의미 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금()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난()처럼 우정을 유지하고 평생 이어지기를 원해서였다.그와 나는 아직도 금란지교를 이어가고 있다.

 

양기대는 그 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유권자들에게 지지 표를 얻어야 하는 선출직 선거에서 경험한 첫 쓴 맛이었다.처음 당한 패배였지만 그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동아일보에서 1988년부터 기자로 뛰기 시작했으니 만 15년의 언론인 생활을 집어던지고 나선 도전이었다.기자로서 양기대는 가히 발군(拔群)의 존재였다.법조기자로서 특히 뛰어났다.현직 노동부장관의 수뢰를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보도해 사표를 쓰게 만들었다.한국기자협회에서 주는 기자상을 1995, 1997년 두 해나 받았다.특종 기사로 받는 `이달의 기자상`7번이나 차지했다.그랬던 민완기자가 느닷없이 정치인으로 변신하겠다고 나섰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이 놀랐다.양기대를 롤 모델로 삼아 언론계에 뒤따라 뛰어들었고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였던 나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아무것도 보장된게 없는 험로를 가야하니 오히려 뜯어말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말했다.“기자가 되고자 할 때 언론을 바로 세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마찬가지로 이제부터는 정치인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나는 결국 그의 의지를 수용했다.적극적으로 지원했다.정치인으로서 양기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지금도 그 믿음은 이어지고 있다.그래서 나는 그와의 금란지교를 여전히 자랑한다.

 

정치인으로서 양기대의 초반은 순탄하지 못했다.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 낙선으로 10년간 인고의 시절을 보내야했다.하지만 행로를 바꿔 선택한 자치단체장 자리는 `법조기자 양기대` 만큼이나 어울리는 `광명시장 양기대`라는 찬사를 불러왔다.한국 관광의 별로 자리매김한 광명동굴 은 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40년간 새우젓 저장창고로 쓰이던 폐광을 매입해 관광 명소로 바꾼 이른바 `폐광의 기적`을 이뤄냈다.2011년부터 개발 작업을 시작해 2015년 유료 입장객을 받은 뒤로 7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찾았을 정도이니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 양기대는 명함 뒷면에 광명에서 파리로 가는 열차 승차권을 그려 만나는 이들에게 건넨다.광명역을 거점으로 북한 땅을 지나 중국과 러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가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 철도다.유라시아대륙철도 계획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2015년 광명동굴 유료화 전환과 정착 이후 나선 두 번째 야심찬 도전이었다.북한 핵 개발로 남북관계는 악화됐고,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는 최악으로 갔다.국내외 정세 어느 것도 녹록하지 않았다.20175월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은 서광을 비추는 분기점이었다.중국,러시아,몽골 등의 도시들이 관심을 보이며 문호를 열었다.광명에서 개성까지 가는 관문 도라산역도 단장됐다.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관계 호전은 희망과 기대를 부풀게했다.하지만 미북 하노이 협상 결렬과 이후 남북관계 냉각은 결정적인 장벽으로 작용했다.윤석열 보수정부의 등장은 한층 더해 끼얹어진 찬물이다.유라시아대륙철도 프로젝트는 정치인 양기대에게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하는 필생의 과업일 것이다.정치인 위치에서 멀어져도 유라시아대륙철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야인 시절인 201810월 한국교통대에 문을 연 유라시아교통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거꺼이 맡았던걸 보면서 그의 진정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남북철도와 유라시아대륙철도는 아직 꿈이다.현실로 바꿔야한다.꿈이 현실로 바뀌면 대한민국 국민의 삶과 한반도의 운명도 크게 바뀔 수 있다.동북아 1일 생활권 시대가 다가올 수 있다.광명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열차로 이동해 베이징에서 회의를 한 뒤 그날 돌아오는 일정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양기대가 이루고자 하는 야무지고 당찬 소망이다.

 

양기대와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고교 시절 내내 우리는 함께 꿈을 키웠다.각각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청춘의 20대 때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같이 고민했다.그의 말처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언론계에 나란히 투신했다.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 와버렸다.나는 언론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부러진 면면을 반듯하게 펴보겠다고 발버둥쳤다.정치인 양기대는 국회의원 재선에 도전한다.재선 시장을 이미 거쳤으니 관록과 경험으로는 4선의 대접을 받아도 부족하지 않을 중진 체급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양기대는 시장으로서는 광명동굴이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낸 바 있다.국회의원으로서는 일관되게 큰 정치를 외쳐왔다.검사 출신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고 앞장서고 있다.실용과 국익 이라는 미명을 앞세운 원칙 없는 굴욕 외교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몇 차례 펴낸 책들의 제목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광명 시장 시절에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기대하시라, 광명`이라고 앞장섰다.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21세기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표방하며 `대한민국 기대효과`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시대의 위기를 돌파하는 품격 있는 카리스마 정치인이 되겠다며 `기대하면 됩니다`라고 외쳤다.정치인 양기대의 활동 목표는 크고 웅장하다.나와 만나면 항상 우리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 물려줘야 할 것인지 혜안을 모으자고 고뇌한다.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자산 한 톨 없는 흙수저 계층이 다수인 불평등한 세상을 양극화라는 한 단어만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건 부족하다.한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20만명에 머무르고 출산율 0.78이라는 세계 1위 수치가 갈수록 악화되는 참담한 현실의 물꼬를 돌려놓지 않으면 공동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환경 변화를 기후 위기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대충 넘어간다면 갑자기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불행을 우리 세대에 감당해야할지도 모른다.정치인 양기대가 고민하는 거대담론의 대상들이다.

 

헤쳐나가야 할 난제가 많고 넘어서야 할 장벽이 높을 것이다.그런 것들을 돌파할 큰 정치를 펼쳐야 할게다.그렇지만 재선 국회의원을 향해 가는 양기대에게 나는 이제 다른 주문을 하려고 한다.큰 정치도 좋지만 따뜻한 정치를 봤으면 좋겠다.세상의 갈등을 풀고 패거리로 나눠 벌이는 싸움을 말리는 일이 중요하다.적과 동지 가리지 말고 누구와도 손잡고 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하소연 할 곳을 못찾아 발만 동동 구르는 사회적 약자들이 언제든 양기대를 찾아가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양기대가 세상을 따숩게 보듬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다.그렇게 활동하는 양기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와의 금란지교를 평생 이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