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하여

[특파원 칼럼] 오바마의 노트르담大 명연설(2009.5.23)

joon mania 2015. 8. 6. 16:22

[특파원 칼럼] 오바마의 노트르담大 명연설(2009.5.23)



지난 5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남겼다. 인디애나주 노트르담대학교 졸업식 축하 연설 자리에서다. 


미국 대학에서는 해마다 졸업 시즌에 축하 연설자로 누구를 유치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대통령을 연설자로 모신 학교는 최고 영예를 안은 것이다. 


하지만 노트르담대학에서는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을 연사로 초청한다는 발표와 함께 엄청난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노트르담대는 170년 전 가톨릭 교단에서 세웠다. 가톨릭 가치관을 대표한다고 자임한다. 


이런 전통을 배경으로 낙태 반대파들은 오바마 방문에 강력히 반발했다. 오바마 초청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동문, 교수, 졸업예정자를 포함해 36만여 명이 초청 반대 청원서에 서명했다. 가톨릭 주교 70명이 초청 반대 의사를 보였다. 낙태를 허용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세금을 지원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트르담대 총장인 존 젠킨스 신부는 용감했다. 소신 있는 성직자였다. 갖은 협박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초청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까지 건넸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원칙과 소신을 보여줬다. 낙태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을 뻔히 알면서 노트르담대학을 찾아가 학생들 앞에 섰다. 


"우리는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공정한 용어를 사용해 서로 다른 견해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합니다." 오바마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종교적 교조주의에 빠져 무조건 낙태에 반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피할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고 호소했다. 상식과 공공선의 기준에서 낙태를 보는 눈을 넓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역설했다. 


오바마가 도착하기 전부터 졸업식장 주변에는 낙태 반대론자 시위가 이어졌다. 연설을 시작하자 일부 청중은 야유를 보내며 방해까지 했다. 졸업예정자들 가운데 일부는 사각모자에 낙태 반대를 의미하는 십자가를 붙인 채 청중석에 앉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보란 듯이 퇴장까지 했다. 


오바마는 웃으며 응수했다. 야유도 퇴장도 받아들일 수 있다며 상관없다는 손짓까지 했다. 그리고는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는 것이 우리 의무"라며 "낙태를 무조건 반대하기 전에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여성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바마는 성경 요한복음 중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 말씀을 전하며 연설을 맺었다. 오바마의 `가슴과 마음을 열어 젖힌` 연설에 청중들은 박수와 갈채로 화답했다. 30여 분간 이어진 연설 중간에 20여 번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국 사회의 이념 대립은 극명하다. 낙태, 동성애, 총기규제 같은 소재는 진보와 보수,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뉘는 양쪽 진영 사이에 답을 찾지 못하는 논쟁거리다. 대중정치인들은 가능한 한 이런 소재에 대해 거리를 둔다. 절반의 찬성을 얻을 수 있지만 절반의 반대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민감한 소재를 받아 정면으로 돌파했다. 종교와 도덕적 가치관을 내세워 적대감을 표출한 낙태 반대파들에게 화해와 대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